국민참여재판(배심원) 대상사건임에도 1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받을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일반 형사공판 절차로 진행했다면 이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인 소송행위로 '무효'다.
그런데 이런 위법을 발견한 2심 재판부가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고지 없이 일반 형사공판 절차로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알리자 피고인과 변호인이 "이의 없다"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1심 재판의 위법이 치유됐다고 판단해 변론을 종결하고 항소를 기각한 항소심 재판도 위법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절도 실형전과가 5회에 있는 A(51)씨는 2009년 6월부터 2010년 10월 사이 대전과 청주 일대를 돌며 18회에 걸쳐 빈 집에 들어가 3323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또한 2010년 8월 대전 대덕구 석봉동 B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흉기로 위협해 금팔찌 등 4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는 등 2회에 걸쳐 강도 범행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A씨는 자신을 검거하려는 경찰관들에게 흉기를 들고 저항하며 한 경찰관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히기도 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도 포함됐다.
1심인 대전지법은 2011년 10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도, 절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8년 및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런데 사건기록에 의하면 제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강도 혐의가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에 해당함에도, A씨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통상의 형사공판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다.
A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는데, 지난 1월 대전고법은 1회 공판기일에 A씨와 변호인이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고지 없이 일반 형사절차로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이의 없다"라고 진술하자 1심 공판절차의 위법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고 같은 날 변론을 종결한 후 2회 공판기일에 A씨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 "국민참여재판 여부 묻지 않은 건 재판받을 권리 중대한 침해로 무효"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흉기를 지니고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 등)로 기소된 A(51)씨에 대한 상고심(2012도1225)에서 징역 8년 및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원심 판결은 위법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서 누구든지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므로,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거나,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사유가 있어 법원이 배제결정을 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이어 "국민참여재판의 실시 여부는 일차적으로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므로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의 공소제기가 있으면 법원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사를 서면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하고, 이를 공소장 부본과 함께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안내서를 송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만일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에 관한 의사의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통상의 공판절차로 재판을 진행했다면 이는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서 그 절차는 위법하고 이런 위법한 공판절차에서 이뤄진 소송행위도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1심이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위법한 공판절차 진행을 하고 그에 따라 1심의 소송행위가 모두 무효인 경우, 항소심 법원으로서는 피고인에게 사전에 국민참여재판절차 등에 관한 충분한 안내와 희망 여부에 관해 숙고할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을 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가운데 그에 관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항소심 제1회 공판기일에 단지 '피고인과 변호인이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통상의 공판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진술한 사실만으로, 1심의 공판절차상 하자가 모두 치유돼 그에 따른 판결이 적법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1심 법원이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공판절차상 하자가 원심에서 적법하게 치유됐음을 전제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 및 하자의 추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따라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