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도무지 뭣 하자는 소린지 모르겠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임윤수
화두(話頭)를 들고 선방으로 드는 대신 화투(花鬪, 카드)를 들고 고급호텔방으로 든 몇 몇 일탈 승들로 대한불교 조계종단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올 것이 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정 스님의 말씀처럼 시줏밥(施主)을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염불보다는 천도재 등을 지내며 거둬들인 과분한 시주에 익숙해 지다보니 시줏병(尸疰, 죽은 사람의 넋으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병)에라도 걸린 게 아닌 가 염려됩니다.
정치학자가 한국불교계에 던지는 '이 뭣고'
충언은 쓰고 간언은 달다고 합니다. 듣기 거북한 입바른 소리보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좋아하는 것 또한 보편적인 사실입니다. 깐족깐족 따지는 것보다 대충대충 넘어가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간언, 입에 발린 소리, 대충대충 넘어 가는 게 우선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미래지향적일 수는 없습니다. 쓴 충언, 듣기 거북한 입바른 소리, 깐족깐족 따지고 대드는 문제나 현안을 잘 해결하거나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라야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학자인 한림대학교 김영명 교수 지음, 개마고원 출판의 <이게 도무지 뭣 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정말 깐족깐족하게 따지며 입바르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품고 있지만 '감히 어디서'라는 자포자기, 논리적 주장의 결여와 게으름으로 책으로는 제시된 적이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을 '한국불교 이것이 문제다'라는 꾸러미로 암팡지게 꾸렸습니다.
저자가 지적한 한국불교의 문제는 한국불교(경전 또는 가르침)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간결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에두르고, 퉁치고, 뭉뚱그리며 뻥까지 치고 있다는 현실들을 조목조목 들어 깐족깐족 따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몰라?' 할까봐 물어보지 못한 궁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