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책 표지.
오마이북
오랜만에 뜻 깊은 역사 공부에다 통일 공부를 한 것 같다. <오마이뉴스>의 대표기자인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한 걸 책으로 엮은 <새로운 100년>을 읽으면서 말이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던 법륜의 <스님의 주례사>와 <엄마 수업>이 왜 인기를 끌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법륜은 그 누구보다도 통섭의 대가인 까닭이다.
그들 두 사람이 3개월 가량 나눈 대담의 주제가 있다. 바로 '통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나 통일 논의가 활발했지, 지금은 주춤한 게 사실이지 않나?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들 먹고사는 데 바쁘다는 것. 30, 40대 부부가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것도 그렇다. 교육비에 버거운 까닭에. 청년들은 또 어떨까?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 오로지 스펙 쌓는 일에 열심이지 않는가. 그들에게도 통일은 관심 밖 사항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다를까? 그들도 가끔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남과 북이 싸우지 않는 선에서 평화롭게 사는 걸 족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런데도 굳이 법륜이 철 지난 듯한 통일 이야기에 핏발을 세운 까닭이 뭘까? 통일이 밥을 먹여주고, 통일이 남북한의 살 길도 열어주고, 일류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초석이라 믿는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다는 걸까? 사실 이명박 정부가 7·4·7공약을 내걸었지만 실질적인 경제성장은 이제 멈춤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리의 경제지표도 그걸 보여준다. 문제는 다음 정부인데, 차기 정부에서도 경제성장의 하락국면을 모면할 길은 없다. 유럽이 경제공항으로 치닫고 있고, 미국도 성장세가 둔화된 마당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그들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우리로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흐름이라면 무엇이 걸림돌로 작용할까? 복지다. 복지는 재원이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버핏세 같은 개념으로 대기업과 부유층을 설득하여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동의하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법륜 스님의 통일 이야기... 왜 하필 이때여야 할까
그와 같은 문제점을 안고서 법륜은 통일 이야기를 시작한다. 통일을 이루게 되면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통일을 하면 북한 동포들과 함께 얼마든지 성장을 일궈낼 수 있고, 그걸 기반으로 복지도 자연스레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통일 방안에 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방법은 뭘까? 혹시라도 남한 중심의 흡수통일 같은 건 아닐까? 물론 큰틀에서 본다면 1국 2체제의 흡수통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북한 지도부의 체제와 신분을 보장해 주고, 북한 동포들에게는 풍성한 원조를 제공해주는 통 큰 포용력을 이야기한다. 그때에만 북한도 남한 사회를 향한 적개심들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품처럼 모두 끌어안는 모습이다.
"젊은이들은 미래 비전적 통일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때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면서 통일 이야기가 반짝 나왔지만 바로 사그라져 버렸죠? 과거 청산적 통일은 부담이 되거든요. 과거 청산적 통일이 늙은 부모를 어떻게 모시느냐의 문제라면, 미래 비전적 통일은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는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77쪽)그런데 왜 하필 이때여야 할까? 다가오는 대선의 시점에 이걸 이야기하는 이유가 뭘까? 국제 정서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경제적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고,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마치 원나라가 저물어 가고 명나라가 떠오르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시기처럼 말이다. 그는 지금이 바로 그때와 흡사하다고 한다. 만약 이런 때를 주도적으로 잡지 못한다면, 그래서 북한이 중국에게 완전 편입돼 버린다면, 통일에 관한 논의는 수십 년 동안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고려가 고구를 계승하겠다고 했는지를 다시 봐야 합니다.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 이후에 등장한 고려가 신라나 발해가 아니라 고구려를 계승하겠다고 했죠. 그것은 양국을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의 통일주도세력은 남북을 동시에 계승하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남북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남한을 중심에 두되 북한을 우리 역사 속에서 포용하는 거죠. 역사를 기록할 때도 저쪽은 괴로정권이라면서 평양에 있는 열사릉을 파헤칠 것이 아니라 그 역사도 껴안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57쪽)법륜은 통일을 통해 더 원대한 계획도 그리고 있다. 이른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선 1단계 통일을 하면 남과 북의 영토가 21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고, 인구도 7천만 명이 된다고 한다. 프랑스나 영국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에 맞먹는다는 뜻이다. 그를 통해 북한 지역이 개발되면 한반도 전체가 활기를 찾게 되고, 그때엔 2단계 비전으로 일본과 함께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만약 한일 경제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중화경제권에 흡수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제대로된 한일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면, 그때부터 3단계 비전으로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를 잇는 환동해권 경제블록, 이른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한 통일 계획, 과연 누가 주도할 수 있을까과연 그런 중대한 일을 누가 주도할 수 있을까? 법륜은 기성 정치권으로는 그 일이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런 통 큰 화해의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까닭이다. 제3의 대안세력을 내다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제는 박정희 같은 '성장의 리더십'에서 김대중 같은 '민주화 리더십'을 지나, 보수와 진보, 남과 북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주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물이야말로 명실상부한 통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안철수의 멘토 역할을 한 것도 그런 흐름을 반영한 건 아니었을까?
"이런 식으로 읽고 대응해야 하는데 기성 정치권은 이걸 못 읽는 거예요. 제가 2,3년 전부터 여당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시대가 이제 바뀔 거라고 얘기해도 별 반응들이 없더군요. 성장의 리더십, 민주화 리더십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대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가령 안철수 교수처럼 기존 세력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금방 대화가 통합니다." (316쪽)법륜. 중학교 때 아인슈타인을 꿈꾸고, 청년 시절엔 유명 수학강사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시원과 고구려·발해사, 그리고 근현대사에 관한 자주적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그의 '통일 이야기'는 정말로 탁월한 식견을 얻는 시간이었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과거 청산적 통일이 아니라, 어린 자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미래 비전적 통일에 관한 그의 통찰력은, 그래서 더욱 뜻 깊게 다가왔다.
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개정증보판
법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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