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담뱃값 천원 인상, 반대하시겠습니까?

5월 31일은 '세계금연의 날', 다시 생각해보는 금연정책

등록 2012.05.31 10:02수정 2012.05.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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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보건기구에서 2010년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제작한 포스터.
세계보건기구에서 2010년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제작한 포스터.세계보건기구

흡연은 예방이 가능한 사망 원인으로 매년 전 세계적으로 600만 명이 담배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1987년부터 세계보건기구에서는 5월 31일을 세계금연의 날로 지정해서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새해가 시작할 때마다 개인 차원에서 담배와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5월에는 국제기구 차원에서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주도로 2005년에 발효된 담배규제기본협약(FTCT)은 올해까지 총 175개국에서 비준하였는데 UN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여한 국제협약의 하나다.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는 협약 비준국에 대해 담뱃값 인상, 담배광고 규제, 담배경고그림 부착, 공공장소에서 간접흡연 규제, 담배성분 규제 등 전면적인 금연정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남성 흡연율 29% 이하 인하 위해 담뱃값 천 원 이상 인상해야

이중 가장 중요한 정책이 담뱃값 인상이다. 담뱃값 인상의 효과는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되었다. 세계은행 조사결과에 따르면 담뱃값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가 4~8%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5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남성의 흡연율을 정부 목표대로 2020년까지 29%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담배광고 규제나 경고그림 부착과 같은 비가격정책을 최대한 강화하더라도 추가로 담뱃값을 최소한 1000원 이상은 인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는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저항이 매우 크다.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는 중요한 논리중 하나는 물가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운동이나 문화생활 등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저소득층은 흡연이 유일한 낙인데 담뱃값 인상은 소득역진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담배 및 주류에 쓰는 돈은 비슷하다. 이것을 감안하면 담뱃갑에 대한 부담은 서민들이 훨씬 높은 게 사실이다.

담뱃값 인상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세금이 증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정부에서는 술과 담배에 '죄악세'를 물려서 세수부족을 메우려고 시도하였으나 서민들에 대한 세금부담 가중이라는 여론에 밀려서 실패한 바 있다. 원래 죄악세라는 것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품(술, 담배, 정크 푸드)의 소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으로 지극히 정당한 정책수단이다. 그럼에도 마치 상품소비자들을 범죄시하는 듯한 죄악세라는 용어의 부담감과 정부 정책 실패로 인한 세수 감소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담배가격에 죄악세를 부과하여 흡연율 감소라는 본연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막대한 세금을 대가로 담배의 생산과 유통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정부가 다시 담배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 정부의 쌈짓돈으로 쓰겠다는 것은 도저히 명분이 서지 않는다.

담뱃값 인상의 유일한 목적은 흡연율을 감소시키는 것이어야 하고 담뱃값 인상으로 얻은 수입은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해결하는 데 한정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최소한 흡연과 간접흡연으로 발생하는 질환에 대한 치료비는 담배를 판매해서 거두는 세금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


폐암 환자의 90%는 담배가 원인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폐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매년 2만 명의 새로운 폐암 환자가 발생하고 만오천 명이 폐암으로 사망한다. 폐암 환자의 90% 정도는 담배가 원인이다. 국가의 승인 하에 생산된 소비자 상품을 원래 용도대로 사용하면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9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폐암 치료비로 지불한 돈이 3300억 원 가량 된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은 전체 진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비율을 70%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추가로 1400억 원 정도가 있으면 폐암 환자들에 대한 전면 무상진료가 가능하다.

담뱃값을 1000원 인상하면 흡연율 감소분을 고려하더라도 수조 원의 추가 재원이 생긴다. 폐암에서 시작해서 후두암, 구강암, 식도암, 췌장암, 신장암 등 흡연이 위험을 현저히 높이는 암종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 흡연과 간접흡연의 위험이 확인된 만성질환으로 전면 무상진료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담배를 구입할 때마다 일종의 보험금을 내는 셈이 된다. 인상된 담뱃값이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흡연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간접흡연자의 의료비로 사용되는 것이니 양식있는 흡연자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흡연 비용의 증가에 부담을 느껴 금연을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지만 말이다.

올해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세계 금연의 날 구호는 담배회사의 훼방(tobacco industry interference)을 알리는 것이다. 담배회사들이 여러 가지 방해 전술로 정부의 금연정책 및 금연 입법과정을 방해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호이다. 유럽,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지금 시점에서 담뱃값을 인상하여 흡연율을 낮추려는 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은 흡연자가 아니라 담배회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권호장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 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권호장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 입니다.
#세계금연의 날 #담뱃값 인상 #폐암 무상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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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학 전문가로서 우리 사회가 좀더 건강하게 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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