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주변에도 이런 완득이가 있나요

이주민들이 그들? '그들은 이미 우리'입니다

등록 2012.05.30 17:06수정 2012.05.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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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완득이> 겉표지

책 <완득이> 겉표지 ⓒ 창비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완득이>(김려령 지음)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뒤에도 좋은 평을 얻었다. 일전에 우연히 출간 전 한글 문서를 인쇄한 <완득이>를 처음 만났는데, 독자를 혹하기 마련인 유명세나 화려한 표지, 말끔한 편집이 없었는데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한 번 집어든 후엔 낄낄거리며 한달음에 읽어치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님,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사실 진정으로 품은 살의라면 이런 식으로 발설할 리 없다. 무력한 어린아이도 아니고 짱짱한 10대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완득이>는 주인공 도완득이 유독 자기만 괴롭히는 담임 '똥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담임이 다니는 교회에 담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오고, "안 들어주면 다음 주에 또" 온다고 협박하는 이 10대의 초상은 무섭기는커녕 마냥 흥겹다. 이놈은 적어도, 말 한마디 없이 불온한 눈빛만 보내다 뒷골목에서 나를 겨냥할 재목은 아닌 것이다.

겉으로야 불량하지만 속으론 한없이 순량한, 첫 대사만 들어도 정이 가는 녀석 완득이. 녀석과 정 들이고, 난쟁이 아비며 핏줄 아닌 '삼촌'이며 알고 보니 속 깊은 '똥주'하고까지 낯을 익히고 있는데, <완득이>는 갑자기 어리둥절한 제안을 건넨다.

자, 이렇게 정들인 완득이가 베트남 여인의 자식이라면 어떻겠느냐고. 아마 초대면에서부터 완득이가 "저희 엄마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작했더라면 반응이 전혀 달랐을지 모르겠다. 똑같은 완득이, 똑같이 불량한 듯 깊이 순량한 완득이였더라도 더디 정들거나 달리 정들지 않았을까. 적어도 '다문화'를 깊이 접한 적 없는 나로선 그러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내 주변에 있는 '완득이'들

 영화 <완득이> 중 한 장면.

영화 <완득이> 중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이주민들이 많이 있는 동네에 사는지라 이주민들을 거리에서 자주 부딪히곤 한다. 애들이 다니는 학교며 어린이집에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있다. 이주민 밴드를 만난 적도 있고, 어쭙잖게도 사진전이며 강연회를 개최해야 했던 때도 있다. 그러나 '옆집 사는 완득이, 내 안의 완득이'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해야 할까. 사진전을 주관했던 친구는 "그게, 다문화 가정 애들이라면 좀 달라 보여야 할 텐데요, 외모론 별로 분간이 안 되는데요, 사진전으론 글쎄..."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니 말이다. 이미 분간 안 될 만큼 '우리'이기도 한 사람들을 굳이 딱지 붙여 추려내고 싶어 했으니.

소설로서 <완득이>가 그러하듯, 인식론으로서 '그들은 이미 우리'라는 접근도 문제가 적지 않을 것이다. <완득이>는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함직한 순간에도 우회만 하고 마는지 모른다. 보급품 햇반을 뺏어먹고 자율학습 시간에 드르렁 코를 골아대는 '똥주'는 빈곤층 지원책이며 고교 교육의 문제에 딴지걸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점이 깊이 드러나진 않는다. 인물들의 유쾌한 건달기와 진지한 사회적 현안이 어떻게 통합 수 있을지 또한 속속들이 탐색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우리'이며 그들의 자산이 우리 자산이듯 그들의 문제 또한 우리 문제여야 한다는 접근법도, 어떤 점에서는 인정해야만 할 이질성을 해소시키고 사회·국가적 통합을 우선시하는 허점투성이 방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한 편에 대해 세상 모든 문제의 해결을 요구할 수 없듯, '그들은 이미 우리'라는 생각이 지금 내 발판이 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일하고 살고 성장해 가는 사람들 중 일부를 '밖'으로 따로 밀쳐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들'이란 지칭이 우스울 정도로 '완득이'들은 이미 이 사회에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을 '착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그리려는 선의나 외국인 범죄율이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을 강변하려는 의분은 그것대로 값이 있을 것이다. <완득이>는 '그들이 누구든' 이미 같은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새삼 일깨워 준다. 완득이의 생모가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정들인 완득이에 등 돌릴 수 없듯이, 설혹 '그들이 문제적인 존재일지라도' 그 문제는 이미 '우리' 공동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렷한 한국어에 익숙한 감성

'완득이'는 적어도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초기값 설정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주 노동의 역사가 20년을 넘고 '다문화 가정'의 2세들이 성년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은 '차이에 대한 관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멀리 넘어서고 있다.

외국인 '며느리'들을 시부모다운 아량으로 품어주고 한국어와 한국 음식을 가르쳐 준다는 동화의 정책으로 과연 이 세월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공동의 삶 속에 처해 있으며 공동의 미래를 향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 가야 할 길이 있겠지만 지금 나로선 <완득이>만도 좋은 참고서다. '다문화 가정'의 자식이기 전에 그냥 도완득이었던 완득이를 먼저 만났던 경험이 상기 새삼스러우니 말이다. 모쪼록 각색된 완득이를 만날 때 이 경험을 기억할 수 있기를. 나를 만나는 사람들 또한 성과 인종과 출신 이전에 나를 먼저 만나줄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권보드래씨는 현재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권보드래씨는 현재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완득이 #다문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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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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