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6.26전쟁 소년병 연구>.
군사편찬연구소
먼저 소년병의 범위와 관련, <소년병 연구>는 "정식군번을 받은 시기를 기점으로 만 17세 이하의 자를 소년병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학도의용군으로 편제되어 1951년 2월 28일 이승만 대통령의 학도의용군 해산명령과 1951년 3월 16일 귀환조치령에 의해 학교로 복귀한 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군번을 부여받은 정규군으로서 그 학적 소유를 불문하고 만 17세 이하의 나이에 조국수호를 위해 전후방에서 근무하고 일정기간의 복무완수(상이 포함)로 인해 제대한 자"를 소년병으로 정의했다.
애초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현역으로 복무한 '18세 미만'(17세 이하) 소년병을 1만4400여 명, 국가보훈처는 2만8694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해왔다. 하지만 <소년병 연구> 편찬 과정에서 소년병 규모는 많이 늘어났다.
<소년병 연구> 편찬 과정에서 국방부가 잠정 확인한 소년병 규모는 2만9597명이었다. 하지만 최종 확인된 소년병 규모는 이보다 6명이 많은 2만9603명에 이른다. 이는 "당시 3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윤한수 6·25참전소년병전우회 사무총장)이라고 한다.
참전자 2만9603명 중 전사자(2573명)를 제외한 소년병은 2만7030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765명은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다만 <소년병 연구>는 "국방부에서 파악하는 소년병 현황도 입대일 기준으로서 우리가 제시한 군번을 부여받아 병적에 정식으로 기입된 기준을 통해 보면 그 수가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자료도 최종적인 확인자료가 아니므로 그 정확한 수는 추후 더 많은 확인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국군에 배속됐던 소년병 2만4263명 가운데 467명이 여군으로 확인된 점도 눈에 띈다. 즉 467명이 '소녀병'으로 징집됐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국방부가 주장해온 '23명'보다 20배나 많은 규모다.
박원호 국방부 예비역정책발전TF장(중령)은 지난 2010년 3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각 군을 통해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파악된 소녀지원병은 23명"이라며 "육군이나 공군에는 없고 해군에서만 그런 사례가 발견됐다"고 말한 바 있다.
소년병의 존재를 처음으로 공론화했던 6·25참전소년병전우회(소년병전우회, 회장 박태승)는 "소녀병 80여 명이 징집됐고, 현재 14명 정도가 생존해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