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57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단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의 부실과 부정 의혹이었다. 이것이 이른 바 구 당권파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더니 어느새 대통령까지 거들어가며 종북이라는 이념공세가 파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은 사라져버리고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과 숙고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 또는 진보세력내에 이른바 종북주의자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보세력에 대한 지금과 같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물론 국제인권규범에 반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사상의 자유는 생각할 자유를, 양심의 자유는 내면의 자유를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이를 외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연결된다. 인간이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가지고 이를 타인과 사회를 향해 표현하는 자유는 인격을 형성하고 실현하여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누리기 위한 기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수렴하여 국민 전체의 인권과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법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국민의 생각과 외침을 수용하느냐 여부 이전에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할 기회를 보장해야만 이것이 가능하다.
일찍이 프랑스 혁명이 낳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을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의 하나라고 선포했고, 인권에 대한 인류사회의 최초의 보편적 합의인 세계인권선언 제18조와 제19조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시민적·정치적 자유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19조도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권리와 표현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을 포함한 세계 대다수의 헌법도 마찬가지이다. 즉 인권 특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합의가 있다는 뜻이다.
유엔 제시한 의견 봐라...표현의 자유를 허하라는데
유엔자유권위원회는 자유권규약에 대한 해석기준을 제시한 일반논평을 통해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어느 사회에서나 필수적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나 제한도 허용되지 않으며, 개인이 어떤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괴롭힘, 협박, 낙인화도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엄격한 법적 요건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1995년 10월 1일 국제법, 국가안보 및 인권전문가 그룹에 의해 채택된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도 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보유하며 모든 종류의 정보와 생각을 수용하고 전달한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1999년 10월 29일 채택된 한국정부 인권보고서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의 최종 견해에서는 자유권규약은 단지 적성단체의 사상과 일치한다거나 그 단체를 위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간주될 이유로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2009년 2월 유엔 고위관리, 시민사회 및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에 의해 채택된「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은 모든 사람이 의견이 반영되고, 발언하고, 정치적, 예술적, 사회적 삶에 참여할 권리는 평등을 달성하고 향유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건이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국가는 특정 사상, 믿음이나 이데올로기, 종교나 종교적 기관을 겨냥한 비판 혹은 이에 대한 논쟁에서, 그 표현이 차별, 적대감, 폭력 등을 선동하는 국가적, 인종적, 종교적 혐오발언에 해당하지 않는 한, 그 비판이나 논쟁을 금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장 최근에는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최근 한국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합의와 권고는 종종 무시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데 수천년이 걸렸다고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죽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할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지 인류는 나치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음에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1950년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 시작해 정치계는 사회전체에 빨갱이 색출 소동이 일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까뒤집어 보여야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적대심이 만연한 1951년에 선고된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유죄판결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에야 즉각적인 폭력혁명을 기도하고 선동하지 않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미국의 반공열기는 민주주의의 원천인 자유로운 의견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위축되었으며 사회복지 정책의 추진도 좌파정책이라는 이유로 지연되거나 중단되었다(장호순,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 참조).
우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재를 비판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면 예외없이 빨갱이, 좌경용공세력, 친북좌파라는 낙인이 찍혔고 영장없는 체포, 장기간의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와 유죄판결이 뒤따랐다. 진보당 조봉암이나 인혁당 피해자처럼 재판절차의 외양만 갖춘 사법살인도 저질렀다. 사상전향을 강요하며 수십년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했다. 심지어 집단 학살도 있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치가 떨리는 역사이다.
민주화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법원의 재심 등을 통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고 형사법제가 민주적으로 개정되었지만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봉쇄하는 명예훼손죄,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행사와 소비자의 불매운동을 가로막는 업무방해죄,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실명제 등 여전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제도는 강고하다. 더군다나 이번 종북주의 이념 공세를 통해 보듯이 수구세력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집단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며 갖은 인신 공격과 왜곡보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종북주의자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