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 '전쟁'... 산부인과 의사들 뿔났네

[현장] 식약청 '피임약 공청회'... 찬·반 첨예하게 갈려

등록 2012.06.15 22:09수정 2012.06.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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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열린 피임약 공청회에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15일 열린 피임약 공청회에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김동환

"사전피임약과 사후피임약 모두 임신을 차단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피임 방법에 대한 선택권을 여성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 정승준 경실련 보건의료위원회 정책위원.

"산부인과 의사들이 폐경기 여성들에게 호르몬제를 처방하다가 부작용 때문에 종종 소송을 당합니다. 사전피임약 농도는 여성 호르몬제의 6배이고 사후피임약의 농도는 여성 호르몬제의 60배지요. 여성 호르몬제는 의사 처방해서 먹으면서 그보다 부작용 위험이 60배나 높은 약은 의사 처방도 없이 먹어야 할까요?" - 산부인과 의사라고 밝힌 한 청중.

주장 하나가 나오면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는 '난타전'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강당에서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변경하는 의약품 재분류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의료계, 여성계, 종교계, 시민사회계를 각각 대표하는 토론자 12명뿐 아니라 방청객까지 토론에 뛰어들어 날선 공방을 펼쳤다.

"약물 오남용 위험" VS. "여성의 피임 권리 보장해야"

지난 7일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했다. 재분류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여성 피임약이었다. 원래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던 사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도 살수 있게 하고,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던 사전피임약을 의사 처방전 없이는 못 팔도록 정한 것이다. 15일 공청회가 열리게 된 이유다.

오후 3시부터 예정됐던 공청회였지만 이미 15분 전부터 현장에는 빈 좌석이 없었다. 객석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천주교 신부와 수사, 수녀, 불교 승려 등 드문드문 보이는 성직자들 사이로 식약청 결정에 찬·반을 표하는 대형 손팻말을 든 청중들이 구역을 나눠 앉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천주교의 한 수녀는 왜 왔느냐는 물음에 "사후피임약을 일반 약으로 한다고 해서 반대하러 왔다"며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발표를 맡은 이선희 식약청 의약품 심사부장은 발표 내내 이번 결정이 전적으로 과학적인 근거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이 부장은 사전피임약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복합제이고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염려되어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사후피임약의 경우, 한 가지 약제로 만들어진 것이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빠른 복용이 중요하므로 일반 의약품으로 바꿨다는 게 이 부장의 설명이다.


 15일 열린 식약청의 피임약 공청회 현장에 손팻말을 들고 참석한 청중.
15일 열린 식약청의 피임약 공청회 현장에 손팻말을 들고 참석한 청중.김동환

발표 이후에는 의료계, 약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사회계에서 초대한 대표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대표자들은 각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같은 직업을 가진 토론자들도 소속 단체에 따라 견해가 갈렸다. 현직 약사인 강인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생명위원은 "사후피임약은 낙태약이나 다름없다"며 "여성과 청소년들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반면 김대엽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사전피임약, 사후피임약 모두 일반 약으로 약국에서 팔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쪽이 소비자 부담도 더 적을 뿐더러 약사가 복약 지도를 하는 것으로 안전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대표적인 사후피임약 '노레보'의 경우, 전문의약품인 지금은 2만7000원이지만 일반약으로 전환하면 1만2000원이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 단체의 의견도 엇갈려다. 김현철 낙태방지운동협회장은 한국과 비슷한 사례로 스웨덴을 꼽았다. 스웨덴은 사후피임약을 일반 의약품으로 전환한 후 판매가 두 배로 늘었고 낙태율도 20% 증가했다고 한다. '사후피임약이 있다'는 생각으로 피임 없이 섹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생각만큼 사후 피임약의 피임 효과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사후피임약이 원치않는 임신을 예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도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과연 원치않는 임신으로부터 어떻게 여성을 좀 더 보호할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전피임약, 사후피임약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관리하고 산부인과에서 하는 다른 피임 방법들도 보험 처리해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변호사협회 부회장인 이명숙 변호사는 "피임약을 찾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우울증 걸린 자녀들도 기록이 남는 것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린다"며 "충분한 교육을 병행하면서 약국에서 팔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식약청은 과학적인 근거 제대로 밝혀야"

이날 공청회장에 모인 300여 명의 청중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토론자가 발언을 끝낼 때마다 박수로 화답했다. 토론자의 입장에 따라 공청회장 어느 부분에서 박수가 터져나올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토론자 발표가 끝나고 청중 질문 순서가 되자 장내는 눈에 띄게 소란스러워졌다.

이날 15분 만에 걷힌 서면질의서는 총 50여 장. 예상보다 서면 질의가 폭주하자 주최 측은 현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으로 진행 방식을 바꿨다. 우후죽순 손을 들고 발언을 하려는 청중들 때문에 현장에 있던 방송사 카메라맨들은 자리를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객석에 있던 종교인들은 처방전 없는 피임약의 판매를 생명 윤리에 대한 문제로 접근했다. 조계종 승려 지율은 "피임약 판매는 태어나는 생명을 살상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최근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인데 이 약을 일반약으로 하면 (저출산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크게 반발했다. 자신을 산부인과 전문의라고 밝힌 한 여성은 "정부가 보험료를 절약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는데 정말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자면 의료보험 적용을 시켜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 남성 산부인과 의사는 "지금 빵을 먹는 걸 가지고 얘기하는 공청회가 아니다"라면서 "피임약은 고혈압약이나 당뇨약보다 훨씬 위험한 약"이라고 일갈했다. "폐경 여성들에게 처방하는 호르몬약의 경우, 피임약보다 훨씬 호르몬 농도가 적지만 처방하기 전에 콜레스테롤이나 유방암 검사가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의사는 "식약청에서는 과학적인 근거로 구분했다는데 왜 훨씬 위험한 피임약은 일반의약품이고 폐경 호르몬약은 전문의약품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정된 공청회 종료 시간을 20분 넘겼음에도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식약청 측은 "오늘 공청회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충분히 보완대책이 뭔지 검토하겠다"며 서면으로 걷힌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홈페이지에 하기로 약속하고 공청회를 마쳤다.
#공청회 #피임약 #식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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