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열린 식약청의 피임약 공청회 현장에 손팻말을 들고 참석한 청중.
김동환
발표 이후에는 의료계, 약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사회계에서 초대한 대표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대표자들은 각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같은 직업을 가진 토론자들도 소속 단체에 따라 견해가 갈렸다. 현직 약사인 강인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생명위원은 "사후피임약은 낙태약이나 다름없다"며 "여성과 청소년들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반면 김대엽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사전피임약, 사후피임약 모두 일반 약으로 약국에서 팔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쪽이 소비자 부담도 더 적을 뿐더러 약사가 복약 지도를 하는 것으로 안전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대표적인 사후피임약 '노레보'의 경우, 전문의약품인 지금은 2만7000원이지만 일반약으로 전환하면 1만2000원이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 단체의 의견도 엇갈려다. 김현철 낙태방지운동협회장은 한국과 비슷한 사례로 스웨덴을 꼽았다. 스웨덴은 사후피임약을 일반 의약품으로 전환한 후 판매가 두 배로 늘었고 낙태율도 20% 증가했다고 한다. '사후피임약이 있다'는 생각으로 피임 없이 섹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생각만큼 사후 피임약의 피임 효과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사후피임약이 원치않는 임신을 예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도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과연 원치않는 임신으로부터 어떻게 여성을 좀 더 보호할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전피임약, 사후피임약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관리하고 산부인과에서 하는 다른 피임 방법들도 보험 처리해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변호사협회 부회장인 이명숙 변호사는 "피임약을 찾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우울증 걸린 자녀들도 기록이 남는 것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린다"며 "충분한 교육을 병행하면서 약국에서 팔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식약청은 과학적인 근거 제대로 밝혀야"이날 공청회장에 모인 300여 명의 청중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토론자가 발언을 끝낼 때마다 박수로 화답했다. 토론자의 입장에 따라 공청회장 어느 부분에서 박수가 터져나올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토론자 발표가 끝나고 청중 질문 순서가 되자 장내는 눈에 띄게 소란스러워졌다.
이날 15분 만에 걷힌 서면질의서는 총 50여 장. 예상보다 서면 질의가 폭주하자 주최 측은 현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으로 진행 방식을 바꿨다. 우후죽순 손을 들고 발언을 하려는 청중들 때문에 현장에 있던 방송사 카메라맨들은 자리를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객석에 있던 종교인들은 처방전 없는 피임약의 판매를 생명 윤리에 대한 문제로 접근했다. 조계종 승려 지율은 "피임약 판매는 태어나는 생명을 살상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최근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인데 이 약을 일반약으로 하면 (저출산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크게 반발했다. 자신을 산부인과 전문의라고 밝힌 한 여성은 "정부가 보험료를 절약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는데 정말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자면 의료보험 적용을 시켜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 남성 산부인과 의사는 "지금 빵을 먹는 걸 가지고 얘기하는 공청회가 아니다"라면서 "피임약은 고혈압약이나 당뇨약보다 훨씬 위험한 약"이라고 일갈했다. "폐경 여성들에게 처방하는 호르몬약의 경우, 피임약보다 훨씬 호르몬 농도가 적지만 처방하기 전에 콜레스테롤이나 유방암 검사가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의사는 "식약청에서는 과학적인 근거로 구분했다는데 왜 훨씬 위험한 피임약은 일반의약품이고 폐경 호르몬약은 전문의약품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정된 공청회 종료 시간을 20분 넘겼음에도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식약청 측은 "오늘 공청회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충분히 보완대책이 뭔지 검토하겠다"며 서면으로 걷힌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홈페이지에 하기로 약속하고 공청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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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피임약 '전쟁'... 산부인과 의사들 뿔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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