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이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2012 대한민국에서의 시사점'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민규
이후 민간부분의 경제역량이 커지고 신자유주의 조류가 형성되면서 국가 우위의 한국경제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완전한 국가주도 모델에서 민간주도 경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부터다. 그러나 민간주도 경제로의 전환이 현실화되고 경제민주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직선제 쟁취로 정치에서 절차적 민주화가 열리면서부터였다.
민주화 과제를 정치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경제·사회 등 모든 부문에 적용하는 실질적 민주화의 움직이 시작되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논의는 지금까지도 실질적 민주화의 담론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경제민주화를 포함하는 연장선에 있다. 2012년 경제민주화 역시 이러한 궤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모순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과거로부터 착근된 국가주도의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에 근거한 부정부패를 경제에서 제거하는 것 혹은 이런 유형의 국가 개입을 줄이는 것도 경제민주화로 이해된다. 또한 민간주도 경제의 중심 세력인 재벌 대기업 집단의 독점적 지배력을 통제하고,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국가 개입의 확대도 경제민주화로 해석된다. 국가 개입의 축소와 확대가 경제민주화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당시에 출간된 <경제 민주화와 위기의 대응철학>이라는 책에는 이런 점이 확실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런 반사회적이고 경제적 비효율을 유발하는 근본 요인은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의 심화에 있다. 따라서 민주화 시대를 겨냥하는 현 시점에서 정경유착의 극복책은 최소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혼합경제 체제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시장실패 보완적 정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민간 기업의 독과점적 산업 조직 내지는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정부 통제는 결코 줄여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 경제가 독점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정부 통제가 강화되더라도 독점 자본을 제어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심될 정도다. 기업 결합, 합병의 규제, 경제력 집중의 억제, 그리고 기타 불공정 거래 방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결국 시장과 기업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와 개입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주의적 의사와 방식에 의한 시장 개입, 즉 민주적 통제로 전환하는 것이 1987년을 전후한 우리 역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어려운 과제이다.
최근 1원 1표의 시장 논리를 1인 1표의 민주적 정치구조가 통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주장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맥락이다.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에 내재된 1원 1표 원칙의 불평등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고 그것이 경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대신 글로벌 자본과 손잡은 재벌문제는 한국경제가 권위주의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시장화와 세계화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민주적 정부의 개입마저 거부하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규제완화, 시장 지상주의 논리가 강력히 한국경제로 수입되고 1997년 외환위기로 확고한 대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벗어나 한국경제의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고 세계화와 개방화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와 관료, 언론 등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정부와 재벌의 성장 동맹이 붕괴되고 대신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과 재벌의 수익 동맹이 구축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조류가 확산되면서, 금융과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자유를 얻은 반면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은 금융부채와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적 폐해에 노출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경제 민주화는 경제의 자유화로 곡해되거나, 기껏해야 자본시장에서의 1원 1표의 주주 민주주의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1997년 이후 민주정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진정한 경제적 민주화를 함께 엮어 가기보다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자유화와 결합시키면서 역사적 오류를 경험했던 것이다. 최근 경제 민주화를 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런 경험을 확대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버전의 경제민주화를 말한다지금의 경제 민주화는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초한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불평등이 국민들의 인내력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 기반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민주화는 과거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우선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전문가들이나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독점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대형마트 입점규제를 요구하는 소상공인들의 요구처럼 생활현장에서 민생운동의 형태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오랫동안 확장시켜 놓은 시장 자율 구조 아니라, 국가의 일정한 개입과 규제를 수반해야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특히 경제적 상위 1%와 재벌 대기업 집단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불공정하게 부를 편취해왔던 관행을 규제하는 '규제 자본주의'를 대세로 하고 있다.
또한 노동 유연화와 같이 시장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권리가 축소되고 협상력이 약화되어 왔던 노동자, 상인, 중소기업, 소비자들의 권리와 협상력을 높여주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재벌개혁이 떠오른 사회적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