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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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최근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는 흉악범죄나 인면수심(人面獸心) 범죄자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피해자가 겪은 아픔과 고통을 똑같이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범죄의 잔혹성이 심해지고 있으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다른 이를 해치는 일이 빈번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 형벌이라는 것은 단지 죄 지은 사람을 벌하는 것에만 그 목적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처벌보다는 범죄자들의 교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주장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사회적인 처벌 시스템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한번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를 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살인자를 사형시킬 경우에도, 엄밀히 얘기하면 모순이 존재한다. 피해자가 이미 죽은 상황에서 법과 제도로서 가해자를 사형시킨다 한들, 그것은 제3자에 의한 처벌일뿐 '완벽한 심판'이 될 수는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에 따르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판을 해야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하나의 상상은 가능하다. 죽은 피해자가 되살아나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완벽한 심판'이 될 수 있다.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부터 출발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완벽한 심판' 말이다.
죽은 피해자가 되살아나는 세상, 그것은 희망일까 어느 날 눈빛이 흐리고 말은 느린 사람들이 나타난다. 소매치기에게 찔려 죽은 뒤 7년 만에 돌아온 주부, 실종된 날의 옷차림 그대로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 등 이들은 억울하게 죽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가까운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종료되었습니다> 속에서는 자신을 살해한 가해자를 찾아내 직접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되살아난 피해자는 자신을 살해한 가해자를 찾아내 직접 죽인 뒤, 빛을 내며 소멸한다. 이로 인해 의문사로 처리된 사건이 해결되며, 법정에서 내려진 잘못된 판결로 누명을 쓰는 일도 없어진다. 되살아난 피해자는 가해자 외에는 공격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은 진범을 밝히는 확실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한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쉬쉬하던 경찰 등 국가기관도 결국 알 수 없는 현상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언론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이고 사라지는 현상을 'RVP'(Resurrected Victims Phenomenon)라고 명명하고, 되살아난 피해자의 존재를 'RV'(Resurrected Victims)라고 부른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괴한 현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또 한편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을 받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는다. 정말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법과 정의가 실종된 지금의 사회와 비교해보니, 유일하게 진실을 밝혀주는 'RV'라는 존재가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완벽한 심판'이란...문제는 주인공 서진홍의 어머니, 7년 전 살인사건으로 죽은 최명자가 되살아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RVP의 일곱 번째 사건으로 기록된 최명자는 그동안의 RV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바로 가해자 외 다른 사람에게 공격 본능을 발휘한 것. 그 대상이 하필이면 또 자신의 아들 서진홍이다.
'RVP'를 연구하는 국정원과 CIA는 그동안의 RV와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최명숙에 관심을 갖고, 서진홍을 진범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서진홍은 진범이 아니다. 수사기관에 의해 최명숙은 진범을 마주하고, 자신을 죽인 진범을 처벌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아서 아들을 죽이려 든다. 과연 최명숙은 불량 'RV'인 것일까?
서진홍은 어머니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이유를 밝혀내려 고군분투하며, 그 과정에서 국정원과 CIA에 맞서기도 한다. 이때부터 책은 본격적인 추리 서사의 구조를 따라가며 숨겨둔 진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결국 서진홍은 'RVP'라는 현상이 한 박사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임을 밝혀낸다. 살해된 아들을 잊지 못하던 박사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죽은 아들을 살려냈고, 거기서부터 'RVP'가 시작된 것이다.
사건의 열쇠는 이제 이 박사가 추진했던 'SSS'(Silma Silmasta System) 프로젝트에 숨겨진 듯 보인다. '완벽한 심판'을 꿈꾸기 위해 박사가 개발한 'SSS 프로젝트'란 과연 무엇일까. 박사는 서진홍을 'RVP'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만든 형벌 시스템은 아니라고 밝힌다. 박사는 오히려 가해자에게 벌을 줄 수 있는 방법보다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완벽한 심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와 '사이코패스'의 엽기 행각을 볼 때면, 때론 이들에게는 죽음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른 형벌은 결코 가해자를 심판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복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종료되었습니다> 속 박사가 개발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도록 하는 '완벽한 심판'은 과연 무엇일까. 가해자만 심판하도록 설정된 'RV'는 왜 범인이 아닌 아들을 죽이려 들었던 것일까.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앞으로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위해 남겨 두도록 하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터무니없는 설정에도 <종료되었습니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죄지은 사람에게 온당한 처벌을 주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묵직한 고민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종료되었습니다> (박하익 씀 | 노블마인 | 2012.04 | 1만3500원)
이 기사는 이카루스의 추락(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종료되었습니다 - 영화 [희생부활자] 원작 소설
박하익 지음,
황금가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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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피해자, 가해자를 죽이다... 옳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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