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를 보고 있는 초등학생. (자료사진)
권우성
학부모: "우리 딸 새벽 1시까지 공부해요."
기 자: "고3이에요?"학부모: "초등학교 6학년이요."기 자: "네? 왜요?"학부모: "국제중학교 보내려고요. 일본어 수업이 밤 11시쯤 끝나고, 딴 거 좀 하면 금세 새벽 1시 돼요. 가엽지만 뭐 어떻게 해…. 그 정도는 해야 뭐든 될 수 있는 나라 아니에요?"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의 어린이집 동창생 엄마와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저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새벽 1시까지 공부해야 뭐든 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구나! 이런 나라가 정상적일까? 자꾸 곱씹어보게 됐습니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며 '기자질'로 밥벌이를 하느라 사실 책상에 애들을 앉혀놓고 공부를 시키지 못합니다. 아이의 공부에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숙제했니?" 정도가 고작이고, 주 1회 실시하는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해 주는 정도지요. 솔직히, 저도 받아쓰기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좀 봐주면 '만점'을 받지만, 안 봐주면 바로 '낙제점'이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는 지금 이 지겨운 받아쓰기를 왜 해야 할까요?""어? …."저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애써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더군요. 받아쓰기에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에게 "원치 않으면 하지 말자"는 과감한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한국에서 공부는 밥벌이 수단과 연결... 공부 안 하면 우리에게 공부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재밌어서 하기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한국에서 공부는 밥벌이 수단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며,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즘 청년들은 너도나도 화려한 스펙을 쌓는데 열을 올리지요. 화려한 스펙을 쌓아도 좋은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1% 가능성에 목을 매고 모두 일렬로 서서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게 아닙니까. 어떻게든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 그러나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들, 홀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복지국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복지국가를 현실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많지요. 학생들은 날마다 학습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오마이뉴스> 기자실에는 상암중학교 학생들이 '직업체험'을 하러 방문했습니다. 우연히도 이 학생들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의 기자회견을 지켜보았습니다. 회견을 마친 국회의원들을 정론관 복도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제발 시험 좀 없애주세요. 학교가 너무 싫어요."전날 기말고사를 마쳤다는 학생들의 입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탄성이 쏟아졌습니다. 국회 교과위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국회 교과위 야당 측 간사를 맡은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은 "시험은 없어져도 공부는 해야지, 혹시 공부 안 하려고 시험 없애달라는 것은 아니지?"라며 농담을 걸었습니다. 몇몇 의원들은 "일제고사 폐지부터 생각해 보겠다"고 응원했습니다.
고백컨대, 요즘 아이들은 과거 저희 세대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공부를 합니다. 날마다 무거운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면 끝나는 데로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집에서 과외를 받으며 오로지 이 경쟁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그 부작용은 이미 청소년 자살, 왕따, 학교폭력 등의 문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즈음, 최근 열린 국회에서는 청소년의 건강권과 학습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선행학습금지 특별법' 시안 발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김 의원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활동하지만, 18대 국회에서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교육 관련 단체의 입법발의를 돕는 것 같습니다.
"선행교육 참여자=학생성적 상위권"... 사실상 효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