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는 '5분 대기조'?

고용노동부는 왜 이주노동자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나

등록 2012.07.25 21:42수정 2012.07.2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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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각 군의 독립 중대급 이상 부대는 유사시를 대비해 5분 전투대기 부대를 편성·운영하고 있다. 흔히 '5분 대기조'라고 한다. 합동참모본부 예규에 따르면 이들은 규정된 탄약 및 휴대 품목을 항시 휴대해야 하며, 즉각적인 출동 및 사격과 작전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그래서 휴식시간에도 전투 군장 차림으로 쉬어야 하고, 취침시간에도 군복에 군화까지 신고 자면서 가면을 취한다. 조금 성질이 모진 지휘관은 5분 대기조를 긴장시키기 위해 수시로 가상 비상을 걸고, 일과 시간만이 아니라, 휴식이나 취침 시간을 불문하고 비상을 걸고, 시간을 잰다. 출동 시간 5분을 넘기면 그날은 그야말로 깨지는 날이다.

"구직자는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때,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기재하고, 사업장 변경 기간 중에는 연락처 변경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중략) 고용센터의 알선에 따른 사용자의 면담 요청 등에 적극 응해야 한다. 만일 합리적 이유(합리적 이유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없이 구인 사용자의 면접 요청이나 채용 의사를 거부할 경우 2주간 알선이 중단되는 불이익을 당한다."

위 내용은 고용노동부가 8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방지 대책'에 따른 안내문 문구의 일부다. 안내문을 읽다 보면, 흡사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는 5분대기조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 안내대로라면 이주노동자는 언제나 휴대전화를 켜놔야 하고, 구인 사용자가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행여 휴대전화가 고장 나거나, 사적인 일로 전화를 받지 않으면 2주간 알선 중단을 당하기 때문에 부르면 부르는 즉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3개월이라는 기한 내에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체류 자격을 박탈당하는 이주노동자들 입장에서 2주 알선 중단은 엄청난 압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두고 고용노동부가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는 노예'라고 공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25일 오후 2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수도권 집중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집회를 통해 사업장선택권리를 박탈하고,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노예노동을 강요하도록 밀어넣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고용노동부는 왜 공공의 적이 됐나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고용노동부 규탄 수도권 집중집회(이주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고용노동부 규탄 수도권 집중집회(이주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고기복

고용노동부는 8월 1일부터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방지 대책'에 따라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업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시행한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구인 사용자의 연락을 한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연락을 받지 못하면 구직을 할 수 없고, 이는 체류 자격 박탈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 대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선택권을 박탈하고, 사업장 변경을 억제하려는 사용주의 요구만을 반영한 정책으로 고용허가제를 산업연수제보다 못한 제도로 만들려는 것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방지대책을 내놓으며 "브로커 개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장 변경 비율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문취업자를 제외한 일반 이주노동자 중 사업장 변경신청자는 ▲ 2008년, 15만6429명중 6만542명으로 38.7% ▲ 2009년, 15만8198명 중 7만183명으로 44.4% ▲  2010년, 17만7546명 중 6만9861명으로 39.3% ▲ 2011년, 18만9190명 중 7만5033명으로 39.6%이다.

즉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변경자 비율이 2009년도에 정점을 찍고 난 후, 2010년도에 5%넘게 감소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브로커 개입 의혹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고용노동부 자료는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마냥 사업장 변경만 막으려고 하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숱한 인권침해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자료의 의미... 최악의 근로조건

고용노동부 규탄 수도권 집중집회 7월 25일 오후 2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있은 고용노동부 규탄 집중집회에서 이재웅 민주노총서울본부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규탄 수도권 집중집회7월 25일 오후 2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있은 고용노동부 규탄 집중집회에서 이재웅 민주노총서울본부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고기복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엄격하게 사업장 변경을 제한받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첫째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 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고자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고자 하는 경우 둘째 휴업·폐업 그밖에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여기에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에 ▲ 사업장의 휴업·폐업 등으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으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두고 있는데, 이는 3개월 이상의 임금체불이나 폭행, 상습적 폭언, 성희롱, 성폭행, 불합리한 차별 등과 같은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증빙이 있을 경우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회사가 고용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싫다고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상당한 임금체불이나 폭행 등의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은 이상, 사업장 변경이 불가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측에서 이주노동자와의 근로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4년 평균 40%가 넘는(40.5%) 비율로 사업장 변경 신청자가 있다는 말은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말해 준다.

회사가 망하거나 월급을 못 받거나 얻어터지지 않는 이상,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이들임에도 40%가 넘는 사업장 변경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이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고용노동부와 생각을 같이 하는 내국인은?

이해당사자인 고용주들은 당연히 고용노동부와 같은 입장이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잦은 이직으로 ▲ 생산성이 하락하고 ▲ 영세업체의 인력난이 심화되며 ▲ 성실한 다른 노동자까지 근로의욕 저하 문제를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이 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희망하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제도를 통해 옭아매려 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아마 이들은 추후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내국인과 차등적인 임금체계를 도입하자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이나 내국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례로 지난 5월 24일 고려대 학보사 고대신문이 고대 재학생 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다문화사회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려대 재학생의 58.8%는 '이주노동자가 취업이나 급여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불리는 고려대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이주노동자가 취업이나 급여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이주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이 안티 외국인단체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데, 이런 주장은 결국 자기 자신들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내국인 노동자 문제

반 외국인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에는 눈을 감거나 차별 혹은 차등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안티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 논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이주노동자 고용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들은 힘들고 위험하고, 작업환경은 좋지 않은데다 임금은 적어서 내국인들은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든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주노동자마저 일하려 하지 않거나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고, 임의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면 그런 사업장은 견뎌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업장이 견뎌낼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보태준다.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에도 위배됨에도 3년이라는 장기 근로계약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작성해 주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못박아준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고용할 수 있는 고용주들만 횡재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하게 해 달라고 늘 아우성이다. 고용주들의 주장이 관철되면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 잠식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정도 되면 안티 외국인단체들은 들고 일어나야 하는데 조용하다. 자신들의 주장처럼 내국인 일자리가 잠식되는 것을 눈 뜨고 쳐다봐야 할 상황이다. 누가 조용히 하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별을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자가당착에 빠진 것일까.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거나 차등 대우함으로 이득을 취하려 하는 유아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일자리 잠식을 염려하는 내국인들의 고용시장을 보호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력 정책 관련해 내놓은 일련의 조치들은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관련 지침은 '노동자는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고,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에 대한 철폐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고용노동부 #노예계약 #사업장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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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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