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 업고 술 마시는 동안 나는 술상을 차렸다.
정가람
핵가족이 큰 원인이겠지만, 요즘 사회는 육아를 전적으로 엄마의 몫으로 단정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최소 세 돌까진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게 좋다는 주장 앞에 많은 직장여성들이 갈등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아이의 생애 첫 3년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바닥부터 시작하는 고된 '엄마 되기'에 자신의 일까지 3년씩이나 희생하라니. 과연 그 3년을 사회는 기다려줄 것인가. 남자의 자기발전은 중요하고, 여자의 자기발전은 육아에 바쳐야 한단 말인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며 아이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말라 충고들을 하지만, 두 아이를 출산·양육하는 지난 3년 동안 난 겨우 세 번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그도 한 번은 아이를 업고. 그러나 남편은 개봉영화를 거의 다 봤고, 꾸준히 영화평을 쓰며 생각을 키우고 있다.
둘째도 돌이 지났으니 주말엔 애들 맡기고 영화라도 보고 오라 큰소리치지만, 토요일 오전 겨우 40분 집 앞 치과에 다녀왔더니 아이들은 오렌지를 뒤집어쓴 채 놀고 있고, 남편은 TV를 보고 있었다. 꼭 가야 하는 회의가 있었던 몇 번은 시부모님과 남편 모두 총출동시켜 아이를 맡겨야 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의 반, 타의 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육아 딜레마 속에 남편에게,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지 못하고 사서 고생하는 나부터 딜레마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 사회가 다 그래'라는 방패보다 '도와주는 육아'에서 '함께하는 육아'의 창을 남편이 들어주면 좋겠다.
모성애를 강요하며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로 더 이상 엄마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또 여자들이 출산, 양육 휴가를 당당히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길, 꼭!
먼저 나부터 '함께하는 육아'를 받아들여 남편, 시부모님께 부담 없이 아이를 맡기고 영화도 보고 치장도 하고 카페에서 대본도 쓰고 그래봐야겠다. 육아와 가사, 내 일에 지친 나는 결코 행복한 엄마, 행복한 내가 될 수 없으니까. 아차차, 깜빡했다.
육아 딜레마에 빠져 사라져버린 행복한 아내의 자리 찾기. 남편도 사랑스런 아내가 있는 집이라면 아무리 육아가 고된 집이라도 출근하는 집은 되지 않겠지. 이런저런 작심 기념으로 옷 두어 벌 쇼핑했음을 남편에게 글로 알리며 하소연 같은 글을 맺는다.
올해로 수유복 졸업하나 했는데, 아직도 최소 2년은 더 입어야 하는 수유복과 임부복(현재 셋째를 임신 중이다). 아이가 늘수록 엄마는 도를 닦아 수도자의 얼굴이 된다 하던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라있는 엄마, 아내, 내가 되길 마음 깊이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