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가 7일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안 부결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진 당의 출구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남소연
"야권대통합은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과 민주당의 결정에 달린 문제다. 이미 참여계는 지난해 야권대통합 주장이 나왔을 때,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으로 간다면 우리도 따르겠다고 했었다. 진보 정파가 민주당의 왼쪽 방을 쓸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설사 (민주당과 통합을) 결정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두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의 입에서는 "안타깝다"는 말이 반복됐다. 지난 해 11월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연대가 하나로 뭉치자고 의기투합을 했을 때 그가 말했던 설렘과 희망은 8개월 여만에 분노를 넘어선 안타까움으로 변해버린 듯 했다.
7일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만난 유 전 대표는 '실패한 통합'에 깊은 회한을 쏟아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안을 부결한 구 당권파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내놨다.
그는 "저를 포함한 참여계 당원들은 특별한 이념 때문이 아니라 비정규직법·파견법 등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 참여정부 시절 악화됐던 노동 문제에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어 통합진보당에 참여했다"며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8평짜리 판잣집 안방을 차지하려는, 아무런 의미 없는 내부 권력다툼만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패권주의와 종북,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하기로 했는데..."그는 "통합할 때 구당권파의 패권주의와 종북 문제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해결하기로 약속했다"며 "하지만 구당권파는 이를 극복할 준비가 안돼 있었고 우리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유 전 대표는 구 당권파의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구 당권파는 대중의 요구나 세상의 변화에 너무 둔감하다"며 "잘못을 성찰하고 교정해서 같은 오류를 피하는 인간의 능력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데 구 당권파에 부족한 게 바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 전 대표에게 진보의 재구성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위해서는 현재 당 내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원래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 구상했던 노동의 기반 위에서 시민사회와 결합한 당,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강화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당을 하자는 기획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교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에 의해 당 전체가 잘못을 고칠 수 없다는 게 증명됐고 지금 우리 당의 존재가 국민에게 이롭기는커녕 해롭다면 당을 없애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야권대통합? 민주노총과 민주당, 전면적 결합해야 가능"유 전 대표는 진보정치 세력이 민주당으로 들어가 진보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민주당의 왼쪽 날개가 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며 그 전제 조건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당의 전면적 결합을 내걸었다.
유 전 대표는 "진보적 색깔을 가진 정치인이 노동계를 기반으로 왼쪽 날개를 형성해야 고립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당 정체성을 진보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며 "진보개혁 진영의 모든 정파가 하나의 정당으로 결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게 가능한 길은 민주노총과 민주당의 전면적 결합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민주당을 선택할 가능성에 대해 "민주노총이 그 정도의 유연한 정치방침을 채택하려면 내부 결속이 강고하고 폭넓은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민주노총이 노동자 지위의 획기적 개선과 노동시장 정책의 큰 변화를 바란다면 정권을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해야한다"며 "욕하고 비판하고 소리 지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대선 출마 초읽기에 들어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에 대해서는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인데 안철수 원장이 짐승의 비천함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 전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구당권파에 혁신 주문했지만 관심 보이지 않아"- 지난해 11월 통합을 결의했을 때 젊은 시절에 꿈꾸던 진보당을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상 겪은 진보당의 현실은 어땠나. "저를 포함해서 참여계 당원들은 특별한 이념 때문에 진보당에 온 게 아니다. 비정규직법·파견법·직장폐쇄·용역폭력 등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참여했다. 이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참여정부 시절 악화됐던 노동 문제에 대해 마음의 짐을 덜고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내부 권력 다툼만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8평짜리 판잣집 안방을 차지하려는 아무런 의미 없는 싸움에 몰두했다. 그래서 혁신을 주문했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4·11 총선 비례대표 부정·부실 경선 이후 당이 잘못해 사죄하고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자가 총사퇴하자고 했는데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해 당을 파탄에 빠트린 행위를 이해하기 어렵다."
- 결국 참여계와 구당권파의 연대는 실패했다는 데 동의하나."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자면 우리는 구당권파와 손잡은 적 없다. 국민참여당 지도부가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협의해 통합한 것이다. 한 정파의 대표와 협의한 적이 없다. 그리고 통합할 때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구당권파는 이를 극복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우리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 구 당권파에게 혁신 의지가 없었다고 보나."그 분들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혁신에 대한 인식의 차가 컸다. 혁신을 하려면 8평 판잣집을 헐고 앞뒤 땅을 사서 더 큰 집을 지어야 하는데 판잣집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더 짓자고 한다. 구 당권파는 대중의 요구나 세상의 변화에 너무 둔감하다. 자기들 세계에 너무 갇혀 있다. 그 분들이 혁신이라고 생각한 것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혁신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유 아무개를 대권 후보로 세워주겠다는 게 혁신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 통합의 실패 원인이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선거용 연합'이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선거용 가설정당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통합 협상할 때 이정희 (전) 대표가 맨 먼저 물어본 게 '통합하려는 게 선거 때문이냐, 앞으로 동지로 계속 같이 가자는 것이냐'였다. 내가 후자라고 해서 협상이 시작됐다. 구 당권파들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속박이라고 생각하고 패권이라고 불렸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통합을 추진했다. 외연이 넓어진 진보정당을 통해 구 당권파의 문제 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과거를 돌아보는 자극제가 되기를 바랐다."
- 참여계가 구당권파의 패권주의를 바로잡는 기여를 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우리를 불쌍히 여겨 위로해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국민에게 사형선고 받은 통합진보당, 없애고 당 새로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