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여름, 야생화 천국

여름휴가, 지리산을 만나다

등록 2012.08.11 17:25수정 2012.08.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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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산의 여름...야생화천국...
지리산...지리산의 여름...야생화천국...이명화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던 길에 만난 야생화...
지리산...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던 길에 만난 야생화...이명화

지리산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첫 눈에 반했던 지리산을 그 후로 여러 번, 그리고 자주 잦은 발걸음으로 먼 길, 험한 산 길 마다않고 평지를 밟듯 시나브로 만나러 왔고 그리움 임 그리듯 돌아서면 보고 싶고 그리웠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그 모든 것이 궁금했고 지리산의 길이란 길은(15개의 등산로가 있다) 속속들이 다 알고 싶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계곡과 길들과 나무와 꽃들...거기에 잇대어 사는 모든 것들을 알고 싶었고 궁금했다. 반한다는 것은 그런 것 인가보다. 먼 길을 지척인양 달려갔고 높은 산 험한 길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랐다. 어렵고 힘들어도 마냥 좋아서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한 3년 뜨겁게 열애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한 동안 뜸했다.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만나러가야지 하면서도 미뤄졌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또 언제 만나겠지 했다. 해서 이번에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두근거림과 설렘 보다는 익숙한 연인을 다시 만나러 가는 담담한 마음으로 옛 추억을 회상하면서 걷는 길이다. 한편으론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함도 섞여 있다.


지리산... 중산리에서 장터목 산장으로 가는 길에서...
지리산...중산리에서 장터목 산장으로 가는 길에서...이명화

3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지리산 중턱 중산리 마을. 뜨겁게 쏟아지는 한여름 햇볕 받으며 지리산탐방지원센터 매표소가 있는 데까지 30분 가까이 걸었고 매표소를 지나 야영장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지리산 들머리로 들어섰다. 오랜 만에 걷는 지리산 숲길이다.

웅장한 자연경관과 역사를 품고 있는 지리산은 대략 15개의 주요산행코스가 있다. 중산리코스는 천왕봉 남쪽의 가장 대표적인 지리산의 관문이다. 중산리를 기점으로 한 등산로는 장터목산장으로 오르는 중산리계곡 길과 천왕봉으로 곧장 치고 올라가는 길 두 곳이 있다. 중산리마을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지름길코스로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915m의 천왕봉을 곧바로 치고 오르는 길이라 천왕봉에 오르는 순간까지 끝도 없는 오름길이고 고도차가 높아 꽤 힘든 길이다. 중산리계곡 길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이렇듯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길고 힘든 여정이다.

지리산의 여름 야생화 천국...
지리산의 여름야생화 천국...이명화

지리산의 여름... 야생화천국...
지리산의 여름...야생화천국...이명화

원래는 한 개의 바위였으나 번개를 맞아 두 개로 갈라졌다는 칼바위를 지나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중산리계곡 길과 천왕봉으로 곧장 치고 올라가는 급경사 길의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잠시 땀을 식혔다. 여름방학에 휴가철이라서인지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다. 날은 쨍하게 맑고 숲은 울창한 나무들로 무성하다. 땀은 비 오듯 온몸이 젖었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은 내일 일출 때 보자 싶어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중산리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계곡 중간에 범천 폭포와 홈바위가 있어 범천골 또는 홈바위골이라고도 불리는 중산리계곡 길. 이어지는 계곡 물소리 옆구리에 따라 붙었다.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투박한 돌무더기 너덜지대를 지나고 유암폭포를 지났다. 유암폭포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훨씬 가팔라지고 울창한 숲길로 이어졌다. 장쾌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 들으며 계속되는 경사 높은 오름길을 인내심 있게 걸었다. 몇 번이고 왔던 길이건만 끝도 없을 듯 이어지는 가파른 긴 오름길에 이렇게 멀었나 새삼 절감한다. 가도 가도 이어지는 길, 점점 고도를 높이면서 몸이 점점 힘들었지만 물소리 들으며 걸어서 좋았다.

지리산 가는 길... ...야생화 피어 흐드러진 장터목 산장 가는 길...
지리산 가는 길......야생화 피어 흐드러진 장터목 산장 가는 길...이명화

높이 올라갈수록 비탈길에 야생화들이 피어 지천이었다. 이름도 다 모르는 야생화들이 그 높은 숲길을 수놓고 있었다. 체력은 점점 한계를 느끼는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위로와 응원을 보내기라도 하는 듯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로웠다. 우리는 야생화길 따라 한 걸음씩 걸음 내디뎠고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당도했다.


반가워라. 장터목대피소. 먼저 도착한 산사람들로 장터목산장 안팎은 붐볐다. 도착하자마자 공터 한쪽에 장소를 물색하고 자리를 깔고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 후에 조금 이른 저녁을 지어먹었다. 지리산에 올라 먹는 삼겹살구이는 꿀보다 더 달았다. 야영할 생각으로 자리를 폈지만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날씨가 하 수상했다. 바람이 거칠거칠 불어대더니 안개가 몰려들었다. 예고 없는 안개의 진군에 우리는 조금 허둥댔다. 어쩐다지. 바람은 성난 듯 불어댔고 짙은 안개는 순식간에 장터목일대를 휘감았다.

지리산 장터목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
지리산장터목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이명화

장터목대피소 사무실에서 안내방송을 했다. 예약자들의 명단을 확인한 뒤에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하고 온 사람들을 배려한 안내방송이었다. 산장 안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야외에 펼쳤던 짐을 모두 거두어 실내로 들어갔다. 자리는 좀 불편했지만 그것도 감사했다. 어차피 하룻밤 머물다 떠나는 산장이다. 잠깐 몸 누이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내 옆에 누운 여자는 밤 9시에 소등하고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바깥 어둠 속에서 울어대는 높은 바람소리 듣고 누워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짧은 잠이었지만 단잠이었나 보다. 새벽 3시경에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화장실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주변은 안개로 포위하고 있었고 바람은 성난 듯 불었다.

짐을 다 챙겨 취사장으로 나가 간단하게 아침을 지어먹고 어둠 속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로 옷도 가방도 젖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바람은 높이 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바위가 덮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람은 성난 듯 높이 불었다. 헤드랜턴 불빛으로 안개로 포위된 어둠을 헤치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어제 날씨는 그토록 맑았건만 예상을 뒤엎은 짙은 안개 때문에 천왕봉 일출은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지리산 일출만 매양 보겠는가.

지리산 이른 새벽...천왕봉 가는 길...
지리산이른 새벽...천왕봉 가는 길...이명화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지리산...천왕봉 가는 길...이명화

짙은 어둠과 안개 속을 헤치며 어두운 지리산 길을 걷는 사람들. 앞에서 뒤에서 불빛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 짙어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불빛으로만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높고 안개는 짙고 새벽어둠은 깊었다. 숲도 길도 젖어있었다. 젖은 흙길과 바윗길, 철 계단 길, 돌계단 길을 더듬어 가다보니 어느새 날이 차츰 흐릿하게 밝아왔고 천왕봉이 저만치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천왕봉이 눈앞에 보이면 그동안 힘들었던 것 다 잊어버리고 한 달음에 달려갔을 터이지만, 담담하게 천왕봉을 일별하고서 천천히 한걸음씩 내디뎠다. 천왕봉에 도착. 안개와 이슬에 젖은 천왕봉 정상석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너도나도 천왕봉 정상석 앞에서 인증샷을 날리고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물을 지우개로 지운 듯 안개바다였다.

지리산... 짙은 안개 속...하산 길에...
지리산...짙은 안개 속...하산 길에...이명화

지리산... 안개 속을 걷다...
지리산...안개 속을 걷다...이명화

이제 우린 하산해야 한다. 장터목산장, 대운사, 중산리 갈림길에서 중산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젖은 나무들 사이에 밤새 이슬과 안개에 젖은 야생화들이 제일 먼저 눈인사를 했다. 구절초도 피었다. 젖은 안개 길에 빛깔과 향기 고운 야생화가 있어 흐린 아침에 빛을 입혔다.

중산리 길로 내려간다. 등산길도 힘들지만 하산 길도 못지않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내려가는 길은 짙은 안개 속으로 걷기였다. 축축한 안개로 숲길은 젖었고 이따금 소낙비가 쏟아져 우의를 꺼내 입었다 벗었다하기를 반복했다. 겨우 도착한 로타리대피소에서 점심을 만들어 먹고 꽤 긴 시간 미적거리다가 다시 걷던 길 걸어 중산리로 내려왔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지리산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설렘도 덜하지만 돌아서면 그립다. 오늘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을 보지 못했지만 안개에 싸인 지리산 천왕봉을 만났고 그 높은 곳에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피어 흐드러진 지리산의 야생화들을 만나 좋았다. 다음번엔 가지 않은 길 따라 지리산을 만나봐야겠다.

지리산... 구절초...
지리산...구절초...이명화

지리산... 이른 아침,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
지리산...이른 아침,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이명화

덧붙이는 글 | 8월1일~2일, 지리산을 만나고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8월1일~2일, 지리산을 만나고 왔습니다.
#지리산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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