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시대였다면 PD수첩은 황우석 사태를 제대로 보도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진은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2005년 12월 23일 오후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힐 당시.
남소연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PD수첩이 겪고 있던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PD들이 정권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 것만 해도 경악할 일인데, 더욱이 작가에게 그 손길이 미치다니... 동료 PD들과 후배 작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정에 세워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문득 상상하기도 했다. 만약 황우석 사태가 이 정권에서 터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취재를 접어야 했을 것이고, 방송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방송을 강행했다면 나 또한 저들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황우석 사태' 후에도 당시 정부에게 정말이지 '몹쓸 방송'을 또 감행했기 때문이다.
2006년 PD수첩에서 다룬 '한미FTA'는 참여정부에게 광우병 방송 못지않게 타격이 컸다. 정부가 공들여 한 홍보 덕에 국민들은 한미FTA에 대해 무지갯빛 환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PD수첩 방송이 나간 후, 대다수 국민들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여론조사 결과, 방송 전후 한미FTA 찬반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대통령이고 정부 관계자라 해도 PD수첩이 미웠을 법하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 PD수첩'에 대한 대응은 현 정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송 후, 제작진은 청와대로부터 놀라운 제의를 받았다. 한미FTA를 놓고 제작진과 대통령이 방송으로 '끝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만큼 노 대통령은 한미FTA를 절체절명의 과업으로 생각했고, 국민들의 반대보다 지지 속에 추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뜻밖의 제안에 더 놀란 쪽은 제작진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그 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함께,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하자니... 게다가 그것을 방송을 통해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니... 지금 시대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토론은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초긴장 속에 토론 준비를 하던 즈음 급작스레 국제적 이슈가 터졌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방송 역사상 길이 남았을 그 토론이 불발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책은 미웠지만, 언론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차마 미워할 수 없었던 대통령. 나에게 있어 노 대통령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미운' 프로그램 대하는 태도, 지금 같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