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민주통합당 전 의원.
권우성
"2007년 MB라는 괴물을 만든 건 우리다. 지금 같은 엄중한 때, 개인과 자기가 속한 세력의 미래를 도모하려고 한다면 그런 정치인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나.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시대정신은 진보이며, 대세는 민주당이니, 4.11 총선은 볼 것도 없이 야권의 승리라고 점쳤지만, 결국 민주당은 졌다. 마치 화이트워시처럼 빨간 색으로 분칠한 새누리당이 국회 의석 과반을 점유하던 날, 국민 대다수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그렇게 130일이 흐르는 동안, 당시 민주통합당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박선숙 전 의원은 마치 침묵의 형벌을 받는 사람처럼 조용히 입을 닫았다. 날씨도 더운데 팥빙수나 한 그릇 하자는 기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그는 모쪼록 삼복더위가 다 가기 전에 만나자고만 했었다. 그러나 언제 보자는 전갈은 없었다. 그러던 지난 17일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잘난 척하다 이제야 연락을 하게 된 건... DJ 서거 3주기를 이대로 보낼 수가 없어서."만나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무려 A4 7쪽 분량의 원고를 미리 보내 1971년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에 맞서 출마했던 청년 정치인 김대중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 꼼꼼히 말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화두는 개발독재에 대한 대안의제이지, 2012년만의 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두 의제가 마치 2012년만의 과제인 양 논의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보탰다.
17일 오전 서울 안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박 전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못 다 이룬 정치적 꿈에 대해 설파했다. 1971년 개발독재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그 미완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서거한 두 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는 후대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올 대선의 최대 화두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제는 아니라는 게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도저히 질 수 없었던 지난 4.11 총선, 2007년 이명박정부라는 괴물을 만든 건 민주당이며 이에 대한 겸허한 반성 없이 또 다시 정권을 달라고 국민 앞에 말할 수 있느냐고 갑갑함을 토로했다.
"2009년에 두 분 대통령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2010년 지방선거 승리는 불가능했다. 두 대통령을 땅에 묻고 국민들이 민주당을 용서한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나 지난 총선이나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저 새누리당과 MB... 바꿔야겠다 단단하게 결심하고 있었다. 지난 총선... 지면 안 되는 선거를 진 것이다. 접시 물에 코를 박아야 하는 일이다."박 전 의원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믿음을 잃은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도 제대로 안하고 있다"며 "이래서야 국민 마음과 믿음을 얻을 수 있겠나"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두 분 대통령의 서거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믿을 수 있나?"라며 "이게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에 비해 오르지 않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현재 위기의 징후를 자꾸 밖에서 원인을 찾으면 안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을 용서했지 정치세력으로서 '친노'를 용서한 것은 아니"라며 "MB라는 괴물을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할 때 '다시 한번 집권의 기회를 달라'는 우리의 말이 국민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다. 탈상을 하는 해에 DJ를 곁에서 모셨던 참모로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경제민주화와 복지에 관한 담론이 역사적 맥락 없이 진행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경제민주화는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대안적 의미로 제시된 것이었다. 복지는 그 안에 포함돼 있었다. 기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민주정부 10년간 진행됐다. 만일 그것이 충분치 못했다면 왜 불충분했는지 그 반성과 대안이 필요한 게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마치 2012년만의 과제인 양 논의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 1971년 박정희 개발독재에 맞서 출마했던 '청년 김대중' 후보가 내세웠던 가치가 '경제민주화'였다는 것인가."1971년 대통령선거를 치렀던 청년 정치인 DJ는 경제민주화, 복지, 평화,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DJ의 정치적 꿈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여권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 그것은 진정 우리가 구체제를 넘어설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봐도 된다. 국민적 힘에 의해,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그 어떤 정치인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화두로 내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정말 구체제를 끝내고 정상적인 새로운 체제를 만들 수 있는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 1971년 청년 김대중은 1997년에야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정치적 꿈이 완성됐다고 보나."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직후 내놓았던 일성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이었다. 경제적 민주주의에 관한 생각이 국정에 반영됐고 실현됐다. 그러나 부족했다. 참여정부에서도 그것이 계승 발전됐지만, 또 부족했다. 그럼 우리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좀 더 내실 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여야 없이 다 똑같은 소리 하는 식으로 물타기 된 정책적 차이가 분명해진다.
박근혜 의원이 내건 맞춤형 복지는 김대중 대통령이 실천했던 생산적 복지의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 박근혜 의원이 경제독재체제, 재벌체제를 만들어낸 박정희시대에 대해 반성 없이, MB정부 5년의 재벌중심정책에 동조했던 데 대해 반성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마치 아버지 시대의 개발독재에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꺼내놓고 국민 앞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왜 이제와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는지 앞뒤가 맞지 않겠는가?"
-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쿠데타는 잘못이 없다는 식이다. 아버지 시대의 유산과 자신의 정치를 구분지어 봐달라는 태도인데."그런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자기 편을 들어주는 국민만 국민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빨간색도 빌려 입고, 당명도 바꿀 수 있지만,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과연 아버지 시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른 태도일까.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기 어려운 입장 이해는 하지만, 대통령 후보는 자식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도 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의원이 떳떳해지려면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의혹과 관련 유골 검안 자료가 새롭게 공개됐다. 박근혜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신과 관련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데."박근혜 의원이 가장 먼저 진상규명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그가 장준하씨 가족을 찾아간 일이 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더 후퇴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용서와 화해는 사실의 확인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아무리 유감을 표명해도 일본이 일제하 성노예로 동원했던 종군위안부에 대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사실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의 사과를 진심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는 분명 공과 과가 있다. 공을 계승하려면 과도 인정해야 한다. 대표적인 과가 민주주의 말살, 인권탄압이다. 실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가혹한 독재정치가 있었다.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노동자 농민 중산층의 희생을 강요했다. 이 두 가지 큰 것들에 대해 이제 우리 사회는 박정희 체제를 넘어설 때가 됐다."
-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도 넘어서야 할 구체제라는 것인가."박정희 시대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박근혜는 구체제다. 또 박근혜 의원이 몸담고 있는 새누리당 정치세력의 문제다. 새누리당은 줄곧 대기업과 재벌 우선정책을 써왔다. 이명박 정부 4년간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 깎아주고 (오르지) 재벌 위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됐다. 선거 때가 되니까 갑자기 옷을 확 갈아입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긴다."
"4.11 총선, 지면 안 되는 선거를 졌다... 접시 물에 코를 박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