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싫어하던 엄마 "걔랑 언제 헤어질래?"

[새로운 가족의 탄생] 7년 함께 한 게이커플, 우린 이렇게 삽니다

등록 2012.08.28 15:18수정 2012.08.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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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철, 집 안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욕실이다. 타일과 천장 등에 낀 곰팡이와 먼지가 습기 탓에 청소를 해도 사흘이면 스멀스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곳 저곳을 락스 물로 솔질을 반복하다 보면 냄새와 땀으로 얼굴은 금방 일그러지고 만다.


후덥지근한 주말, 나의 동반자는 집이 덥다며 게이 탁구 모임에 나갔다. 신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웃집 기도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혼자 심통을 낸다.

불현듯 게이 커뮤니티 회원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동반자 관계에서 욕실 청소는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한 사람이 하게 마련이야."

과연 그 말이 합당할까?

스물여덟 살, 집을 영영 떠나다


나의 고향은 목포 너머의 작은 섬이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동네 형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렸던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였다. 집안 사정상 뭍으로 이사를 오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동성에게 느끼는 사랑은 친구들의 그런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가족들, 친구들, 교사들, 이웃들, 목사님 등에게 나의 사랑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성 정체성을 깨닫고 난 이후, 집과 학교는 삶과 꿈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동성애자로서 나의 삶과 꿈을 좌절시키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들의 교육과 훈육의 최고의 목표는 단지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단지 그것뿐이었다."

의사 고시에 합격하고 수련을 위해서 집과 학교와 병원, 지역 사회를 떠나기로 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살고 싶은 나의 몸부림이었다. 사실 의대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해서 학교 병원에 남기도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과 기대의 눈길을 모른 척하며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몇 달 몇 년일지 모를 타지 생활을 위해서 떠났던 버스 창 너머는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이제 모두 다 잊고 말겠어, 다시는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혼잣말을 곱씹었다.

엄마! 내가 먼저 꼬리 친 거거든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동성애 커플.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동성애 커플.청년필름

수술 받으신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갑상선 암이 재발했다. 서울 지역의 대학 병원에 다시 진료 예약을 했다. 근거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방 대학 병원 진료까지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가기로 한 전날,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길 잘 보라니까 옆에서 그것도 안 보냐. 좀 전에 저기서 빠졌어야 하는데."

운전하던 '마님'(나의 동반자의 별명)은 내가 길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쏘아붙인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기 위해서 '마님'은 내 업무가 끝나는 시점에 병원 정문 앞에 한 달여 가까이 대기 중이다. 신경 외과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와 기관 절개로 겨우 숨을 유지하시는 아버지를 아주 잠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장례식 사흘간과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는 날까지 '마님'은 늘 나와 함께 해주었다. 1년 전에 커밍아웃하고 둘이 동거하노라 고백까지 했기에 어머니와 가족들도 나와 '마님'이 어떤 관계인지 잘 알았지만,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어머니의 환갑이어서 우리 자매·형제들과 그들의 또 다른 가족, 그리고 '마님'과 나는 바닷가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는 요즈음도 '마님'의 안부를 항상 이렇게 묻곤 하신다.

"걔는 잘 지낸다니...순진한 내 아들 꼬셔가지고, 걔랑 언제 헤어질래?"

속으로 항상 이렇게 대꾸, 아니, 사실을 말하고 싶다.

"어머니, 나를 꼬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꼬리 친 거라구."

이젠, 마님과 나는 세시간 정도는 우습게 수다를 떨 수 있게 됐다. 한국 게이 인권 운동 단체 '친구 사이' 대표로서, '마님'과 동반자로서 7년여를 살아가다 보니 느는 것은 맥주 주량, 넉넉한 뱃살이다.

요즘 고민은 '입양'이다.

"여유 되면 '마님'하고 나, 아이를 입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우리, 이렇게 살아요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동성애 커플.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동성애 커플.청년필름

"넌 몇 년째 똑같은 말을 해도 나아지지 않니?"

막 설거지를 마친 그릇에 고춧가루 몇 점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다시 헹구면 되잖아."

난 이럴 때 항상 덤덤하게 대꾸한다. '마님'이 제일 지겨워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제도권 교육이든 일상이든 '경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면서 살아간다.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직간접적인 '경험'이 부족하다면 결코 '성숙' 혹은 '성찰'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또한 '성숙'과 '성찰'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삶의 욕구'와 '경험'을 통해 얻어진 '성찰' 혹은 '지식'을 배제한 채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 고정 관념과 감정을 가지는 우리 사회 전반의 태도가 과연 성숙한 혹은 합리적인 모습인지 의문스럽다.

청소를 마치고 욕실을 바라보니 뿌듯하다.

귀찮아서 타일에 낀 곰팡이와 얼룩을 조금만 남겨둔다면 욕실은 금방 다시 지저분해질 것이다.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인권을 논의한다면 인권의 참다운 가치는 금방 지저분해지고 빛을 잃을 것이다.

'동성애'와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혐오하고 차별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며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반자 관계에서 욕실 청소는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연민이 더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의 동반자인 '마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 게이 인권 운동 단체 '친구 사이' 대표 박재경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 게이 인권 운동 단체 '친구 사이' 대표 박재경입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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