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등 학교 관리자들이 근무성적평정(근평) 점수를 빌미로 승진을 앞둔 여교사를 성추행하고, 여교사로부터 접대를 받아왔다는 투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지만, 인천시교육청은 일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말, 일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인천지역 교사들을 만나 이번 투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교사들은 성추행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승진제도로 인한 관리자들의 부당한 대우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공개된 여교사의 투서 내용을 보면, 인천에서 근무하며 승진하려는 여교사들의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투서는 두 차례 시교육청에 보내졌으나 해결이 되지 않자, 3차로 노현경 인천시의회 의원에게 보내졌다.
이 여교사는 투서를 통해 "승진을 위해서는 근평을 잘 받아야하는데, 근평이 교장의 손에 달려있다 보니 교장의 따까리(개인 일까지 챙기고), 기쁨조(술자리에 새벽까지 모셔야하고), 심복(교장이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가야 하고), 장거리 출장에도 비서(1박을 하는 경우, 왜 여교사가 운전을 해 모시고 저녁에 술대접을 하고 수발을 들어야하는지)가 돼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학교 관리자들이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에게 보직(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을 주고 근평을 잘 준다는 명분으로 술자리를 원하고, 노래방에서 껴안고 하체 접촉하기, 음식점에서 손잡기, 무릎에 손 올리기 등의 성추행을 일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교장이 여름과 겨울방학 학사시찰(연수)을 떠날 때는 교무부장, 연구부장, 교감 등이 돈 봉투를 준비해 교장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부평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승진을 위해 근평 점수를 잘 받아야하는 교무부장이 매일 교감에게 커피를 탔다"며 "커피 타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학기 마지막 날에는 힘들어서 교사들 앞에서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장이 술 먹고 근평 점수를 잘 받아야하는 교무부장에게 술값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고, 교장이나 교감 집에 초상이라도 나면 교무부장은 하루 종일 상가집에 가서 노예처럼 일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남동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근평을 잘 받기 위해서는 특히 명절에 잘해야 한다"며 "교장이 술 먹는 날이면 항상 대리기사 역할을 해야 한다, 교장이 당구를 치면 당구를 배워야하고, 낚시를 좋아하면 낚시 도구를 사는 등 교장의 취미에 따라 자신의 취미도 바꿔야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승진을 위해 2년 째 근평 점수를 쌓고 있는 한 교사는 "강화도에 근무하는 한 교무부장은 집이 부평임에도 불구하고 연수구에 사는 교장을 월요일마다 학교로 모셔 와야 했다"며 "정말 더 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해 시내 학교로 전근을 가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교장은 교무부장에게 술 마시러 가자고 해놓고 자기가 아는 교장들을 불러서 술을 먹고는 술값을 교무부장에게 부담시켰다"며 "교장이 방학 때 학사시찰을 따라갔는데, 교감은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고,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은 술을 박스로 사서 버스에 직접 실어주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사는 "정말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교장에게 이런 식으로 잘 보이는 교사가 근평을 오히려 잘 받는 경우도 있다"며 "교장이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근평과 승진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3년 간의 근평'이 승진 여부 좌우... 교장 의중이 근평에 막대한 영향
현재 교육공무원(교사)의 승진제도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을 따르고 있다.
승진규정을 보면, 교사는 학교에서 교감·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교육청에서는 장학사·장학관이나 교육연구사·교육연구관으로 승진할 수 있다. 보통 교사는 교감으로 승진한 후 교장이 된다. 나머지는 다 평교사일 뿐이다. 시교육청이나 지역교육청에서 장학사를 거치면 교감으로 조금 더 빠르게 승진할 수도 있다.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통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면 능력 없는 교사라는 딱지가 붙는다. 때문에 현재 승진제도에서는 승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감 승진을 노리는 교사들은 거의 다 승진을 앞두고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의 보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다.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경력, 직무연수나 자격연수 등을 통해 점수를 얻는 교육성적, 연구대회나 학위 취득으로 얻는 연구실적, 가산점, 승진 전 3년간의 근평의 총점이 기준 점수를 넘어야한다. 그런데 승진을 노리는 교사 대부분은 '3년간의 근평'을 제외하고 거의 만점으로 다 채운다. 때문에 '3년간의 근평'이 승진 여부를 좌우하는 셈이다.
근평은 교장 40%, 교감 30%, 동료교사들의 다면평가 30% 비중으로 점수가 주어진다. 교감에게 30%의 비중이 있지만, 교감도 교장에게 근평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교장의 뜻을 거스르긴 어렵다. 때문에 사실상 교장의 의중이 70%나 반영되는 구조인 것이다.
근평은 품성(10)·공직자 자세(10)·학습지도(40)·생활지도(20)·교육연구와 담당업무(20) 등 5개 항목에서 수·우·미·양·가로 매겨진다. 교감 승진 인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동료교사들이 모든 항목에서 '수'를 줄 수는 없기에, 결국 교장이 모든 항목에서 '수'를 줘야지만 교감 승진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는 3년간 교장이나 교감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고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승진을 위해 2년 동안 근평을 받고 있는 한 교사는 "현재 승진제도는 교사들이 승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로, 솔직히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는 학생들 가르치는 데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근평 제도는 교장에게 승진에 대한 절대 권력을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며 "학교 행정이나 직책 등을 돌아가면서 맡는 보직제로 바뀌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현경 의원은 "투서 공개 후 시교육청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한 의혹이 있고 시교육청의 대응책이 미비하다"며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승진제도와 근평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노무현 정부 말에 교사 승진제도와 근평제도를 바꾸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도 논의가 있었으나 교육계 내 일부세력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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