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는 값이 싸고 시공하기가 좋았다. 빠르게 집을 짓거나 고칠 때 가장 쓰기 좋은 재료였다. 그만큼 망가지기 좋았다. 사진은 경남 밀양.
김대홍
지붕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작전은 꽤 신중해야 했다. 우선 특공대를 짜서 역할을 나눴다. 물건을 가져오는 A, 물건을 받는 B, 망보는 C였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A였다. 몸이 날래고 재빨라야 했다. 몸이 무거워서도 안 된다. 자칫하면 지붕이 무너질 수 있었다. 담을 탈 줄 알아야 하고, 소리없이 지붕을 타야 했다. 몸무게 배분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꽤 지붕을 잘 탔다. A 역할을 많이 맡았다는 뜻이다. 몸이 날래진 않았지만 어딜 밟아야 할지를 알았다. 그 당시 지붕 재질은 슬레이트가 많았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잘못 밟으면 '와지직'하며 부서지기 좋았다. 슬레이트는 가볍고 설치하기 좋았지만 그만큼 무게를 견딜 힘은 없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기 위해 먼저 나무로 틀을 짠다. 슬레이트 지붕은 나무틀 위에 얹는다. 발을 디뎌야 할 곳은 나무틀이었다. 그 구조만 알면 슬레이트 지붕을 밟는 것은 쉬웠으나 조심성 없이 내딛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그런 아이들이 A 역할을 맡으면 슬레이트는 어김없이 '뿌지직' 거렸고, 집 안에선 '거 누구야'하는 소리가 벼락같이 들렸다. 그 때가 되면 B와 C는 '빨리 도망쳐'라고 큰소리 치고는 제 살길 찾아 달아나기 바빴다. 그 상태에서 A는 대부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는 상으로 지붕에 매달리게 된다. 작전이 한 번 실패로 돌아가면 꽤 오랜 시간은 지붕 접근 금지가 되니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해 기와 지붕은 무척 쉬웠다. 훨씬 튼튼했기 때문이다. 슬레이트 지붕처럼 가장자리만 밟는 게 아니라 전체 어디든지 밟아도 됐다. 즉 무너져 내릴 염려는 없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가끔씩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생긴 틈이었다. 잘못 밟으면 크게 '달그락' 소리가 난다는 점이 문제였다. 여기에서도 힘 조절이 중요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해 기와 지붕 침투가 쉬운 건 맞았지만 아무한테나 시킬 순 없었다. 이래저래 A는 한 번 성공한 사람이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거의 역할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슬레이트 지붕은 주재료인 석면이 암을 일으킨다 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석면이 뭔지, 몸에 나쁜지도 모르던 시절 너도나도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지만 지금은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슬레이트를 걷어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간혹 슬레이트 지붕을 보게 된다. 그 때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면서 석면 공포는 저멀리 사라진다. 추억의 힘이란, 상상의 힘이란.
7년 동안 사라진 초가 240만채, 대부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슬레이트. Slate. 지붕을 덮는 데 쓰는 천연 점판암의 얇은 석판 또는 시멘트와 석면을 물로 개어 센 압력으로 눌러서 만든 얇은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