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구성에 담은 전통적 색채와 주제의식

최윤호 화백 첫 개인전, 10일까지 '오늘' 갤러리에서

등록 2012.09.05 10:41수정 2012.09.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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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호 화백의 전시회 입구에 걸려 있는 그림. 제목이 무엇일까?
최윤호 화백의 전시회 입구에 걸려 있는 그림. 제목이 무엇일까?최윤호

최윤호 화백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오늘'의 전시장 입구에서 홀연 발을 멈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도 하고, 지금껏 뇌리를 지배해온 익숙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듯도 한 그림이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당긴 탓이다. '화투 광'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열두 장의 화투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 한 폭의 그림에 화투가 품고 있는 전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시회 이름이 만화방(萬畵方)이다. '만'은 '많은 생각, 느낌, 인식' 등을 뜻한다. 작가가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주제를 작품으로 창작했다는 의미다.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어릴 때 만화가게를 드나들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추억을 되살리듯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면서 '전시회 이름은 아내(이진희)가 붙여줬다'고 말했다.


과연 화투 그림부터가 전시회 이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꽃(花)을 들고 싸우지만(鬪), 화가는 평화와 공존을 보여준다. 그림의 색깔도 우리 눈에 익숙한 전통적 빛이어서 아늑하고 편안하다. 그림의 제목도 '사계'이다. 언제나 모두들 그림 속의 풍경처럼 어우러져서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만화방에 간 아이 같은 기분으로 그림 감상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은?'최윤호
연작처럼 느껴지는 '당신의 마음은?' 시리즈는 화가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곱고 정갈한 청조의 물과 하늘, 땅을 배경으로 보름달이 떠있는 중에 늑대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물에는 사람 머리만큼 작은 달이 빠져 있고, 역시 작은 조각배를 탄 이가 그것을 건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 작품은 늑대와도 같은 커다란 욕망과, 물속의 조그마한 달을 건지려는 시인과도 같은 해맑은 심성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본령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사람은 언제나,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화가는 시인이 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작품 '시인, 달을 건지다'이다. 소설이나 수필이라면 '당신의 마음은?'이 1장이고, 이 그림이 2장이다. 늑대는 사라지고, 시인이 마침내 달을 건졌다. 시인의 달은, 물속에 빠져있을 때보다 훨씬 커 보인다.
 '시인, 달을 건지다'
'시인, 달을 건지다'최윤호
사람은 늘 어떤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


사람은 늘 어떤 사물이나 현상과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사물과 현상들을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고, 때로는 생소하게 느끼거나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사람과 이런저런 인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의미다.

화가는 사람과 존재가 지니는 인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여 폐부를 찔러온 순간들을 날카롭게 포착, 이를 우화적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화가의 그림 속에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해온 오만 가지의 생각과 느낌들이 녹아 있다.


 '그는 세상에 꽃을 던졌다'
'그는 세상에 꽃을 던졌다'최윤호

'그는 세상에 꽃을 던졌다'도 그런 인식을 보여준다. 면류관을 쓴 예수의 형상화라는 사실을 단숨에 알려주는 이 작품은 처절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십자가의 예수를 보면서 늘 피, 대못, 가시, 채찍, 처형 따위만 떠올리는 사람들을 향해 화가는 되묻는다. '왜 그렇게만 생각하느냐?' 그는 세상에 꽃을 던졌다! 그가 얼마나 이 세상을 아름답게 했는데, 우리는 그를 통해 꽃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화가의 통찰이다.

슬픔만 보려 하지 말고 아름다움을 한껏 껴안으라

슬픔만 보지 말고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키우라고 화가는 말한다. 그러려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를 화가는 '창문을 열어두길 참 잘했다'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문을 열어 두라. 창문을 열어두면 달이 그리로 들어온다. 꽃도 들어온다. 아늑한 방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창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저절로 '창문을 열어두길 참 잘했다'는 탄성이 샘솟는다. 그럼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은 그렇게 행복해지는 법이다.

 '창문을 열어두길 참 잘했다'
'창문을 열어두길 참 잘했다'최윤호
당연히 화가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와 확대된 듯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체호프'라는 별명을 듣는 현진건의 문장이 간결해지고, 세기적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품이 작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일견 단조로운 듯도 한 최윤호 화가의 경향성도 사실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사물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화가는 특유의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표현을 통해 보는 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해석을 자극하고자 했다.

그런가 하면 화가는 색채를 선택하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중심으로 골랐다. 재료면이나 표현 방법에서는 전통 민화의 분위기와 다소 거리를 두면서도 '민화는 집단적 감수성의 표현'이란 특징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민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즉 화가 한 사람의 세계관과 감성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세계관 및 감성과 좀 더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만화방'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그림에 대한 벽을 느낄 수 없는 것은 화가의 이같은 세심한 배려 덕분이라는 말이다.

우화 속에 깃든 밝은 주제, 화가와 감상자 사이의 벽 허물고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낙엽이 수북히...'라는 부제를 단 최윤호(崔允豪) 화백의 '만화방'전은 9월 4일부터 10일까지 계속된다. 화랑은 '갤러리 오늘'로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17-11번지에 있다. 1988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화가는 현재 경신여자정보고 교사로 재직 중이며, 이번이 첫 개인전이다. 전시 작품은 모두 25점.

4일 개막 행사를 앞두고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작품을 해설하던 화가는 "어린 시절에 만화가게의 달콤한 유혹을 느껴보셨거나, 웃어본 지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만화는 아니지만 그림을 보는 시간만큼은 만화 이상의 즐거운 상상과 수다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제자들과 함께 선 최윤호 화백
제자들과 함께 선 최윤호 화백정만진

 '자화상'. 최윤호 화백은 "UFO 때문에 내 머리가 자꾸 빠집니다"하고 크게 웃었다.
'자화상'. 최윤호 화백은 "UFO 때문에 내 머리가 자꾸 빠집니다"하고 크게 웃었다.최윤호

덧붙이는 글 | 갤러리 오늘 053-425-6845. 기사 속의 사진은 전시장의 작품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 작품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덧붙이는 글 갤러리 오늘 053-425-6845. 기사 속의 사진은 전시장의 작품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 작품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최윤호 #만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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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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