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유방 잃은 것도 서러운데..."

미용과 재활의 모호한 경계... 유방재건술은 의료행위로 봐야

등록 2012.09.26 12:06수정 2012.09.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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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Shouting 카페에서 샤우팅을 하고 있는 제정자씨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현재 우리나라의 투병 중인 암환자는 100만 명, 그리고 완치된 암환자는 1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완치된 암환자를 위한 정책과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제정자(51)씨는 48세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3년 만에 유방암 2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이내 수술 일정을 잡고 2010년 수술대에 오른 제정자씨. 유방 보존을 위해 부분절제를 할 것이라던 의사의 처음 소견과 달리 수술실에서는 유방에 퍼져 있는 석회로 인해 전체를 절제해야 했고 그렇게 단 몇 시간에 왼쪽 가슴을 잃었다.

회복기에 접어들며 유방암 환자를 위한 인조브라를 권유받았지만 착용에 대한 불편함은 생각보다 컸다. 특히 여름엔 착용 부위가 땀띠로 얼룩졌고 바쁜 와중에 인조브라를 착용하지 못하고 외출하게 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가슴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엔 언제나 편하게 즐겨하던 찜질방과 사우나는 이제 감히 즐길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Shouting(샤우팅) 카페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사례가 소개되었다. 유방절제술 이후 겪게 되는 고통과 불편함은 제정자씨만이 느끼는 게 아니다.

1997년 유방암 수술로 오른쪽 가슴을 잃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 이준희(61)씨는 수술 후 1년쯤 지난 그 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씨는 유방절제술을 받은 지 1년 뒤쯤 대중목욕탕을 갔다. 물론 절제된 가슴이 신경 쓰여 타올로 몸을 가렸다. 그런데 한참 몸을 씻는 와중에 5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이씨에게 다가왔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던 이씨는 아이에게 "몇 살이야? 엄마는 어디 있어?"라고 물지만 아이는 주빗하며 울먹거렸고 이 소리에 놀란 아이의 엄마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엄마의 "왜? 왜 그래?"라는 물음에 아이는 이씨의 오른쪽 가슴을 손으로 가리켰고 아이 엄마는 정말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사색이 되어 도망가듯 아이를 끌었다. 이후로 이씨는 두 번 다시 대중목욕탕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2001년 유방절제술을 받은 김지연(51)씨는 수영장에서 인조유방이 빠져 곤욕을 치렀다.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강습을 받던 그녀는 구석에서 조그만 무언가를 가지고 던지고 받기를 하며 모여 있는 한 무리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지 하며 궁금해 하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가슴에 있어야 할 인조유방.


그런데 그것을 보았음에도 김씨는 "그거 제거예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을 던지고 받고 하던 무리들의, 만지면 안 될 이상한 것을 만지는 듯한 표정과 징그럽다며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50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수영장을 나온 그녀는 그날 이후 3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유방절제술 OECD국가 중 최고! 하지만 지원은 제자리걸음


 유방 촬영 사진을 검사하는 장면.
유방 촬영 사진을 검사하는 장면.연합뉴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민 10만 명을 기준으로 1999년 5744명에 지나지 않던 유방암 신규 발생자는 2009년 1만3460명으로 늘어났다. 또 국가암정보센터의 2009년 여성 암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유방암은 전체 환자 수 9만 3337명 중 1만 3399명(14.4%)으로 갑상선 암(2만 6,815명 / 28.7%)에 이어 두 번째다.

그리고 OECD 국가의 평균 유방절제술 수술률은 인구 10만 명당 58.6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02.6명으로 가장 높았다. 또,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1만3854명에 달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40대 이하의 여성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의 경우, 유방재건수술이나 인공유방 등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지원한다. 이를 미용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재활치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기획재정부는 2011년 7월부터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인 쌍꺼풀과 주름살제거, 코성형, 지방흡입술, 유방확대수술과 축소수술 등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항목에 유방재건술도 포함되었다. 이는 유방확대 및 축소수술을 유방절제술 이후의 유방재건술과 별개의 의료행위로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거수술만큼이나 비싼 재건수술, 삶의 희망은 바닥으로

제정자씨의 경우 그동안 수술비와 병원비 그리고 비급여 약값 등 유방암 수술과 치료에 약 1700만 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하지만 비급여로 구분되어 있는 유방재건술의 수술비만 약 2000여만 원 정도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랄까.

유방암환자는 재발을 막기 위해 한 달에 몇 백만 원하는 항암치료제를 먹어야 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이 항암치료제는 재발률이 높은 환자뿐 아니라 안 먹어도 될 환자들까지도 먹는 경우가 허다해 그 만큼 재정적인 부담은 커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지원에 대해 어느 질환이냐에 따라 경중을 나누기도, 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도 문제이지만 유방절제술을 받는 환자들의 경우 반 수 이상이 40대 미만의 가임기 여성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가슴은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 중 하나이자 이성에게 성적매력을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유방절제로 인해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는 물론이요, 남편과의 잦은 다툼과 혹시나 남편의 애정이 식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여기에 좌우가슴의 밸런스가 깨져 겪게 되는 척추측만증까지 새로운 삶의 희망에 이어지는 그녀들의 아픔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큰 격차를 보인다.

 순간 순간 울음을 참으며 여인으로서 차마 입에 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용감하게 전하던 제정자 씨는 이날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순간 순간 울음을 참으며 여인으로서 차마 입에 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용감하게 전하던 제정자 씨는 이날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한국환자단체연합회

건강보험 적용기준 변화와 의식개선 시급

제2회 Shouting 카페의 멘토 안기종 대표(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 사례를 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유방암 절제술을 받았더라도 재정이 넉넉한 경우에는 모두 유방재건수술을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질병과 달리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불가한 것이 아니라 유방재건술이 필요한 유방암 치료환자들은 100% 재건수술을 바라지만 경제적인 부담감으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과 마음의 고통까지 견뎌가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여성 암전문병원 백남선 원장은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 외형적인 변화가 생기면 장애인으로 혜택을 받지만 유방을 절제하거나 직장에 인공항문술을 시행한 경우 등은 장애인으로 등록도 못되고 혜택도 받지 못한다. 특히 유방절제술을 받은 경우, 80% 이상이 큰 상실감으로 인해 결혼생활과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며 정신적인 치료 등을 동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또,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다면 여성들을 위주로 하는 화장품이나 가방 등을 제조·판매·유통하는 대기업이나 해외 유명그룹 등에서 이 부분에 동참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국가 역시 일부분이나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 이야기는 주변에 유방암 환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남성의 경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다가오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유방재건수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싶어 하는 여성의 욕심이 아니라 유방암으로 삶의 희망을 잃었던 이들이 그 병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생에 희망과 용기를 갖기 위한 방법이다.

대한민국은 누구나 병에 걸리면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에 100%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실질적 보장률은 58%(2010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42%는 온전히 환자들과 환자가족들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제도의 의의를 살펴보면 "건강보험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하여 일시에 고액의 진료비가 소요되어 가계가 파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험원리에 의거 국민들이 평소에 보험료를 낸 것을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 운영하다가 국민들이 의료를 이용할 경우 보험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상호간에 위험을 분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라고 밝히고 있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이 권리에 유방암환우들의 아픔을 씻겨줄 한줄기 희망이 생기길 바라본다. 그리고 미용과 재활의 올바른 기준을 통해 유방암생존자들이 당당히 어깨 펴고 환하게 웃을 그 날을 기대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유방암 #샤우팅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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