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음악을 편식하는 편이다. 다양한 음악을 골고루 듣는 게 아니라 평소 좋아하던 노래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 게 습관이다.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게 귀찮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출근준비를 할 때나 이동할 때, 잠자기 전에 항상 음악을 틀어놓지만 주의 깊게 음악을 감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러던 내게 최근 변화가 생겼다. 이전부터 좋아해왔던 인디밴드가 새로운 앨범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대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걸까.
사실 그동안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주로 멜로디와 가사에만 집중해왔다. 기타나 베이스, 드럼, 건반 등이 그 음악에 어떻게 조합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조용한 방에서 이들의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데, 그 모든 소리의 조합들이 하나의 '앨범'으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력과 기술적인 과정이 거쳐갔는지가 느껴졌다.
보통의 경우 어느 뮤지션의 히트곡이 그 뮤지션의 전체적인 음악 색깔을 대변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뮤지션이 공들여서 만든 앨범 하나를 제대로 감상하고 나면 그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음악적 색깔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히트곡 <꿈꾸는 나비>만 들으면 이들의 장르는 '듣기 편한 모던락 '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들의 앨범 수록곡을 모두 주의 깊게 들어보면 오히려 펑크나 사이키델릭, 아방가르드한 노이즈 음악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나는 그들의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적인 세계를 점점 더 넓혀나가는데 있어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정치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인으로서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정치'에 대한 이미지는 여야 간의 개싸움, 한미FTA 같은 대형이슈에 대한 찬반,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대한 궁금함.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1년 전부터 국회를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정치라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여야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고 국정감사를 취재하고 총선거를 경험하니 '정치'라는 행위가 점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야 간의 개싸움 안에 숨겨진 아주 치밀한 정치적 계산들, 대형 이슈가 품고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파장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정치라는 행위가 정치인들에게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우리 국민들은 과연 정치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2012년 정치 소용돌이 속 여러 현상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느꼈던 단순한 이미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언론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가 책 <안철수를 읽는다>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정치 혐오증을 통치술로 활용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대통령은 민생을 위해 열심히 일 하는데,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한다'는 식의 프레임이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혐오증은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정당의 당원이 되면 결국 나도 정치라는 흙탕물에서 더러워질 것'이라거나, '정파성에 매몰돼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도록 한다. 안철수 현상도 결국 이것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음악에 몸을 깊숙이 담그지 않고서는 음악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 듯이, 정치에서도 '참여의 비용'을 치르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히트곡이 그 뮤지션의 음악적 색깔을 대변하지 못하듯이, 표면으로 나타난 어느 한 면만으로 정치 현상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없기에 유권자들은 정치 속으로 조금 더 몸을 깊숙이 담글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는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시민상으로 '파당성을 감수하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기반을 갖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성을 갖는 참여자'를 꼽는다. 그는 "아무리 현실의 정당이 불만족스럽더라도 현실 밖에서 그것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노력하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대표곡 <꿈꾸는 나비>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한 번의 꿈만으로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난 꿈을 꿔. 천만번 죽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꿈." 다음 대통령은 '정치에 참여하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나라'가 아니라 '정치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꿈을 마음껏 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길 희망해본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그런 나라를 만들 대통령을 우리 국민들이 뽑아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송채경화 씨는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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