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누테(Chanute)가는 길가축 사료용으로 쓰이는 곤포 사일리지(Silage)가 들판에 쌓여 있다.
최성규
SR 146번 선상에서 앞에 놓인 SR 57번을 넘어가면서 길은 160th Road로 바뀌었다. 길 초입에 공사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자전거 앞머리를 들이밀었다. 3마일 정도 갔을까? 길은 사라졌다. 막강한 공사차량들이 길을 말 그대로 후벼판 것이다. 지나갈 만한 작은 틈조차 없다. 허어, 이런 낭패를 봤나.
근처 주민의 말에 따르면 3달 전에 시작된 공사는 올해 11월에 끝날 예정이다. 근처에 샛길이 있으되 자전거 라이더에게는 까탈스런 자갈길이다. 어쩔 수 없이 후퇴다. 왔던 3.5마일을 다시 되돌아간다. 차누테(Chanute)까지 가는 길이 'ㄴ'이 아닌 'ㄱ'자 경로로 변경되었다.
차누테(Chanute)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들렀다. 나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음료수 한 캔을 샀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종업원이 출발지를 물었다.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시작했지.""완전 미쳤네.""난 미국에 사는 사람도 아냐. 비행기 타고 뉴욕으로 날아왔거든.""진짜 미쳤네.""너도 할 수 있어."
그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짤막한 휴식 후 해를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기까지 2, 3시간의 여유가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인구 103명이 사는 작은 마을 베네딕트(benedict). 우체국 외에는 편의시설이 없는 지역이라 라이더들에게는 기피지역이었다. 최근에 식료품점 하나가 문을 열었고 거기서 캠핑도 가능하다는 정보가 아니었다면 들르지 않았으리.
굽이진 샛길을 따라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식료품점 문은 닫혀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주 토요일은 휴업일이었다.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빵에다가 땅콩 버터나 발라 먹어야겠구나.'
침울해진 상태로 동네를 서성거리는데 뒤에서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이 근처에 캠핑할 만한 곳 있을까요?""저쪽 교회로 가면 공터가 하나 나올 거야. 작년이었나? 거기서 자전거 탄 녀석들이 텐트를 치던데.""괜찮으시면 아저씨 집 앞에다 텐트 쳐도 될까요?"별 기대를 품은 질문은 아니었다. 절박한 상황이라 무조건 찔러보려던 참이었다. 씻지도 못하고 굶주린 채 자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처량했다. 그는 말 없이 트럭을 뒤로 돌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날 따라와."워낙 비좁은 동네라 100미터 전방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나를 집으로 들이더니 제 집처럼 편히 쉬라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집안 구석구석을 맴도는 이 곳은 별천지였다. 황홀함에 반쯤 넋이 나가 있는데 그가 양해를 구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테니 잠시 혼자 있으라는 말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뭐하는 녀석인지도 모르면서 그는 나가버렸다. 외려 손님인 내가 주인 걱정을 하게 되었다. 자전거 여행은 자석과도 같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 가슴이 넓은 이들만 족집게처럼 끌어낸다.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인연이 서로를 이어주는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칠 때쯤 돌아온 아저씨는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했다. 단백질에 굶주린 내게 치킨 너겟은 천지가 놀랄 만한 맛이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몸이 덩실덩실하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 존스(Steven Lynn. Jones). 노인들만 사는 이 마을에서 51살이면 제일 어린 축에 속한다. 유일한 자전거 라이더로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