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19일 서울고등법원장을 상대로 소위 판사들의 '기계적 판결'을 꼬집으며, 판사는 법의 행간을 읽어 지혜로운 '솔로몬 판결'을 해야 한다고 지적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정부질문이나 국정감사 등에서 논리 정연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국무총리나 장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박영선 의원(3선)이 여성 최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의 '진가'를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박 의원은 법조인 출신이 아닌 언론계 출신이어서 더욱 주목됐다.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이날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서울고등법원 관할 법원들에 대한 국정감사를 마무리하면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법조문이 있다고 전제하자며, 사자와 토끼를 예를 들어 김진권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질의했다.
박 위원장은 "사자와 토끼가 있는데 살 곳은 이 방밖에 없다. 그러면 법조문에 의해 이 방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사자와 토끼가 이 방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사자는 좋다고 하고 토끼는 못살겠다고 한다. 그러면 재판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돌발 질문을 던졌다.
대기업 대형할인마트로부터 골목상권이나 전통재래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과 관련,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를 근거로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것은 위법해 무효라는 법원의 잇따른 판결을 지적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김진권 서울고등법원장은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하셔서 대답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라고 숨을 고른 뒤 "SSM사건에 대해 말씀드리면 조례와 법률이 상위법과 어긋났을 때, SSM슈퍼마켓의 횡포가 있다 하더라도 절차위반이 있다면 설사 법적으로 정당하더라도 판사가 그것(조례)을 무효로 선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사자가 대기업이고 토끼가 서민이다. 지금 사자와 토끼를 같은 방에서 살라고 하는데, 사자는 좋다고 하고 토끼는 못 살겠다고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라며 "법원장님이 답변하신 대로 (골목상권과 전통재래시장을 지키기 위한 조례가 무효) 판결이 나와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라고 무효 판결로 인한 다음 상황에 대해 물었다.
이에 김 법원장은 "법관으로 능력의 한계가 아닌가 합니다. 법관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준다면 소위 선출되지 않은 직업에서, 프라이드가 강한 직업에서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와 같은 질문은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그러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의 박영선 의원의 진가가 발휘됐다. 박 위원장은 "아니죠"라고 맞받아치며 "법의 행간을 읽어보면 거기엔 틀림없이 '사자와 토끼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방에 어느 정도의 칸막이가 필요하구나'하는 법관에 주어진 권한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 법원장님 말씀대로 한다면 모든 법이 양형에 의해서 기계적인 밴딩머신(커피자판기)에 의해서 커피 250원 누르면 250원짜리 나오고, 300원 누르면 300원짜리 커피 나오듯이 기계적으로 판결을 해야 되겠지요"라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그러나 재판을 판사인 인간에게 맡기는 이유는 법의 행간을 읽어서 (사자와 토끼가) 함께 공존하라는 그런 의미가 반드시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 위원장은 "그래서 법원이 어떤 양형기준과 관련해 그물이 너무 촘촘하다던가 아니면 그물이 느슨하다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런 법의 행간과 관련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거기에 담긴 뜻을 해석할 수 있는 (판사의) 지혜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의 말을 쉽게 정리하면 판사들이 사건을 법의 잣대에 주입하는 소위 커피자판기인 밴딩머신과 같은 기계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판사가 인간으로서 공동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담은 '솔로몬 판결'을 내려 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국정감사 마무리 발언에 들어가 한숨을 돌리던 순간 박 위원장의 돌발 질문에 소위 '법대로 판결' 취지로 대답하던 김진권 서울고등법원장은 "개인적으로 위원장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듣겠습니다"라고 자세를 낮췄다. 김 법원장으로선 돌발 질문에 당황하고, 또 박 위원장의 예상치 못한 '솔로몬 판결' 주문에 머쓱해진 상황이었다.
그러자 박영선 위원장은 거듭 "판사는 기계가 아니고, 분명히 사람이고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다"고 당부하며, '판사는 사건을 법에 주입해 판결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어쩌면 잊고 있었던 단순한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줬다.
이날 박영선 위원장이 돋보인 것은, 검찰이나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예를 들어 특정 형사사건이 거론되는 경우 대체로 검찰에 대해서는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법원에 대해서는 유죄 또는 형량에 관한 지적이 대체적인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판사는 기계가 아니라며 솔로몬 판결을 주문한 박 위원장의 목소리가 법원 전체에 퍼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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