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나쁜 이야기에 쉽게 상처받을까?

<이야기 테라피> 저자와의 만남

등록 2012.10.25 10:13수정 2012.10.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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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스씨의 <이야기 테라피> 독자간담회에 모인 독자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자신의 속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시스씨의 <이야기 테라피> 독자간담회에 모인 독자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자신의 속마음을 나누고 있다. 오승주

"어릴 적에 무척 소심했는데, 그게 너무 싫어서 성격을 확 바꿨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시 소심한 어린애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10월 17일 서울 용산청년창업플러스센터 별관 강의실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꺼내놓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쾌활하고 리더십 있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은 소심하고 음울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고, 생활이 재미없고 흥미가 떨어진다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 역시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진심으로 아껴주는 모습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진심을 서로 나누었다.

10년 동안 최면 치료와 심리 치료, 심리 상담을 해온 이시스씨의 <이야기 테라피> 독자 모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야기 테라피>는 현대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서 살짝 이야기 물꼬를 트거나 허약한 이야기를 더 강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방식의 치유법이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왕비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이야기는 심장과 같다. 이시스씨는 "사람의 몸이 음식을 흡수한다면, 사람의 정신은 이야기를 흡수한다"고 설명했다. 왕비는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의 거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을 해왔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이야기 테라피>, 22면) 이 이야기를 일상으로 끌고 오면 김태희 같은 아름다움만 생각하느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약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들이 쉽게 상처를 받고,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시스 씨는 "우리가 나쁜 말은 쳐내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좋은 말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우리는야기했다. 친구가 나에게 "너 요새 소문 안 좋더라."라고 던진 한마디가 나에게 충격을 주면서 내 행동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만들고, 소문이 안 좋게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하지만 "너 멋지다" 같은 칭찬이나 격려 같은 말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럼 쉽게 상처받은 나는 어떻게 치유를 해야 할까?

마음의 방어선을 넘는 스토리텔링의 힘


 이시스씨는 손수 기른 고구마를 쪄와서 독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시스씨는 손수 기른 고구마를 쪄와서 독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오승주
인간의 뇌는 진화의 단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른바 파충류의 뇌는 생명보조노가 무의식의 반사작용을 한다. 포유류의 뇌는 감정과 정서, 느낌을 담당한다. 그래서 개들도 슬픔을 느낀다. 인간의 뇌는 논리, 이성, 언어 등을 담당한다. 이시스 씨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에는 이런 요소들이 혼재돼 있는데 파충류 뇌와 포유류 뇌의 어떤 부분이 결여되었을 경우 이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 오작동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뇌의 특징들을 잘 만져줄 필요가 있다. 잘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으로 이시스 씨는 "존중, 제안, 선택, 이야기, 은유, 재미, 유익, 생존, 파워, 설득, 반복, 가정, 열린 마음' 등을 강조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무력화, 혼란, 충격, 경악'을 이용해도 잘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나 교육 기관에서는 공포나 무력화, 혼란 등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움직인다고 한다.


이시스씨는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다. 그냥 머리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마치 환부에 침을 놓듯, 뭉친 근육을 풀어주듯 정확한 지점에 이야기를 떨어뜨리면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치유의 단계로 갈 수 있다. 이야기는 차라리 '연출'과도 같았다. 이시스씨는 밀턴 에릭슨(Milton H. Erickson)의 두 사례를 들려 주었다.

하루는 동네 이웃의 딸이 친구들에게 발이 크다고 놀림을 당하자 아이는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엄마가 괜찮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방어선이 생겨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할까.

소녀의 엄마는 에릭슨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에릭슨 박사는 모월 모일 모시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하고 몇 가지 주의를 준다. 첫째, 절대로 아이를 치료하러 왔다고 하지 말고 아픈 엄마를 치료하러 왔다고 할 것. 둘째, 혹시 치료를 할 때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니 딸에게는 딴데 가지 말고 자리를 지킬 것.

약속할 날이 찾아왔고 엄마의 치료가 다 끝나자 딸이 에릭슨 박사를 마중나가게 되었다. 에릭슨 박사는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딸의 발을 밟고 나서 이렇게 화를 낸다.

"네 발이 너무 작아서 내가 밟고 말았잖아. 발이 조금만 더 컸어도 밟을 일은 없었을 거야!"

딸은 그날부터 자기 발이 크다고 상처받지도 않았고 외출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저항선을 단번에 넘어버리는 스토리텔링 대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야기 테라피>는 우리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찾아주고, 거기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준다.
<이야기 테라피>는 우리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찾아주고, 거기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준다. 이야기나무
에릭슨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그의 제자 자이그(Jeffrey K. Zeig) 박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유명하다. 자이그 박사는 담배를 너무 좋아하는 '골초'였는데, 하루는 출장을 가는 길에 에릭슨 박사가 자이그 박사에게 사무실에 들렀다 가라고 말한다.

스승의 사무실에 들르자 에릭슨 박사는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 손님 중에서 담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가 담배 피우는 것을 꽤나 멋있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전혀 멋지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계속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서 "아 참, 자네 출장간다고 했지. 잘 다녀오게"라고 한마디 할 뿐이었다. 자이그 박사는 황당했지만, 스승이 무슨 일을 한 것인지 곧 깨닫게 되었다.

자동차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자 스승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났다. 자이그 박사는 담배를 필 수 없었다. 그날부터 자이그 박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위 두 사례를 보면 이야기가 두 사람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인가 욕망하고 있지만 좌절을 받고 상처를 받은 상태다. 정서적인 상처나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는 욕망은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맞는 이야기를 찾고 이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집어넣으면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시스씨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발견하지 못했거나 오랫동안 잊어버렸을 뿐이다. 그래서 "마음속 이야기를 깊이 품고 있다가 자주 꺼내보고 질문을 던져 보라."고 주문한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에게도 소중한 이야기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문득 싱거운 생각이 떠올랐다.

'내 인생을 이야기로 쓰면 몇 권의 책이 될 거야.'

그렇다. 우리는 모두다 몇 권의 책은 가슴 속에 품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깨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야기 테라피> 이시스 씀, 이야기나무 펴냄, 2012년 8월, 380쪽, 1만7000원

이야기 테라피 - 성장과 치유를 위한 힐링 스토리 24

이시스 지음,
이야기나무, 2012


#이야기 테라피 #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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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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