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회생은 중견기업이 해답이다

[주장] 한국, 어떤 기업문화를 벤치 마크해야하나

등록 2012.10.26 21:29수정 2012.10.26 22:12
0
원고료로 응원
미국 중견기업, 미국 경제에서 얼마나 기여했나? 미국 중견기업의 숫자와 위상, 고용규모, 생존율.
미국 중견기업, 미국 경제에서 얼마나 기여했나?미국 중견기업의 숫자와 위상, 고용규모, 생존율.박기용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15년간 국민의 소득 추이를 조사한 결과 의미 있는 소득증가를 이룬 국민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는 소득 정체, 60%는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오히려 소득이 감소했다. 특히 하위 20% 사람들은 실질소득이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함으로써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기업이나 개인들이 경기 흐름에 비슷한 영향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사회계층에 따라 경제적 부에 대한 접근성과 성취도가 큰 편차를 보인다. 한국사회는 이른바 '양극화'의 암울한 자화상을 줄기차게 그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20대 80 사회... 20%만 소득증가, 나머지 80%는 뒷걸음질

이런 상황에서는 GDP 성장률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그 와중에도 소득증대를 보이는 소수 계층이 존재한다. 또한 GDP가 증가했다고 치더라도 그 과실이 상위 10% 또는 20%에 집중된다면 나머지 대다수 국민에게 정부가 발표하는 그 잘난 경제 통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황이 이 지경으로 이르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뒤엉켜있을 것이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여야 후보 그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게 일자리 보장과 안정적 경제활동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해법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경제 사회적으로 양극화로 치닫는 배경 가운데 '일자리의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하나의 블록'이 존재한다. 이들이 한국사회의 20%를 구성할 것이다. 그런데 허리가 약하다. 규모는 대기업에 비해 작지만, 탄탄한 중견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 20%에 포함돼서 탄탄한 삶을 누리지 못하면 대부분 영세한 소기업이나 자영업으로 내몰려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를 위한 험난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강한 중견기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 년간 대기업과 소기업 모두 취약성을 드러낸 반면 중견기업들의 경영성과는 상대적으로 눈부셨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하이오 주립대학은 지난해 10월 GE와 함께 중견기업의 경영을 분석하는 연구소 (National Center for the Middle Market)를 설립했는데 - 설립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감안할 때 대기업 사례 중심이던 미국 경영학에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 여기서 최근에 내놓은 자료가 의미심장하다. 이에 따르면, 세계경제가 가장 힘들었던 지난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중견기업 (medium-sized firms) 의 생존율은 82%로, 소기업의 57%에 비해 크게 높았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생존율 97%. '아~ 역시 대기업의 경쟁력이 월등하네'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기업은 경제위기 속에서 대부분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수 직원을 감원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연 매출 10억 달러, 한국 돈으로 1조 원 이상을 대기업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대기업은 앞서 언급한 동안 370만 명의 직원들을 잘라냈다.


미국 중견기업, 금융위기 파고에서도 대기업 뛰어넘는 생존력 보여...

이에 반해 82%의 생존율을 보인 중견기업은 220만 명의 인력을 추가로 채용했다. 큰 위기 앞에서 예상과 달리 대기업이 아니라 중규모 기업이 높은 생존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탄탄한 성장을 보이는 미국 중견기업 미국의 중견 기업 숫자는 19만7천 개. 고용규모 증가와 매출증가 자료. 대기업의 숫자는 감소하나 중견기업은 늘어나
탄탄한 성장을 보이는 미국 중견기업미국의 중견 기업 숫자는 19만7천 개. 고용규모 증가와 매출증가 자료. 대기업의 숫자는 감소하나 중견기업은 늘어나박기용
오하이오 대학의 연구소가 분석한, 중견기업 성공비결은 다음과 같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력하게 집중했고, 대기업보다 오히려 더 세련된 경영전략을 구사했으며 글로벌 감각도 현저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기업과 달리 가족경영 또는 가족자본에 개인투자가들이 결합된 형태의 중견기업들은 주주들로부터 단기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 차원의 투자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경제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대략 20만 개를 헤아리는 이들 중견기업은 모두 4100만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견기업의 파워는 인도와 러시아의 경제규모를 합친 수준, 즉 세계 4위 규모의 경제라고 한다. 이쯤 되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현 대신 '중간이 아름답다'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독일 중견기업 '미텔슈탄트' 부러워... 벤치 마크 열중

유럽대륙의 두 강자인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중견기업의 성공을 둘러싼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 최신호에 따르면 프랑스는 독일이 지속해서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배경에 강한 중견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임하는 내내 독일식 중견기업의 문화와 자세를 프랑스 기업에 접목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애가 닳도록 독일기업을 모방하려 하지만, 잘되지 않은 이유는 우선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중견기업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인데 이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기 쉽지 않다. 미텔슈탄트는 원래 19세기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인'(artisan)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2차대전 이후 중간 규모의 기업이 독일경제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독일경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2차대전 당시 대기업들이 나치 정권과 결탁했던 아픈 과거 때문에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대기업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정서가 형성됐다고 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원자력과 항공우주산업에 치중하면서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축을 이루게 됐다. 프랑스의 중견기업들은 기초산업과 자본재 분야에서 독일과 경쟁하기보다는 소비재를 놓고 이탈리아와 경쟁하는 구도로 위상을 축소시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취약한 기업문화도 독일식 중견기업의 형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독일은 최고 경영자에서 일선 실무자까지 9단계의 관리층이 있는 반면 프랑스 기업에는 그 배가 되는 18단계의 관리층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 기업이 관료화하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빠른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다.

독일 중견기업 성공은 기술력 보유한 실무진 우대... 그리고 무차입 경영

독일기업들은 구체적이고 세밀한 기술적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 기술자들을 우대하는 반면 프랑스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아는' 엘리트 관리층 위주로 기업이 돌아간다고 한다.

독일의 강력한 중견기업 미텔슈탄트는 근면하고 우직한 독일 민족의 속성을 반영하듯 회사 성장을 결코 차입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이 보유한 이익금을 바탕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는 전략을 선호한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프랑스와 독일, 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와 유사한가? 모두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 한국에 비해 월등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어느 나라가 좋다, 나쁘다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새로운 경제적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양극화를 없애기 위해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면서도 고용창출효과가 큰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면 한국이 어떤 나라의 기업문화를 벤치 마크해야하는지는 자명하다.

<이코노미스트>도 지적했듯이, 강력한 중견기업 육성은 정부가 갑작스레 내놓은 정책이나 자금지원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은 '기업문화'의 문제다. 기업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경제 이전에 한 나라 국민 정서를 지배하는 가치 체계라는 생각이 든다.
#중견기업 #기업문화 #MITTELSTAND #일자리 양극화 #20대 8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