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예물
최규화
이도남(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입니다. 지난 기사(
'훈남' 예비신랑 알고보니 백수 이혼남, 어쩌죠?)에서 약혼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약혼은 남녀가 결혼을 약속하는 일이다. 약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외도, 불치병 등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파혼을 할 수도, 당할 수도 있다. 약혼자에게 학력, 경력, 직업 등을 속인 것도 중대한 파혼사유가 된다. 파혼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나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한 쪽은 상대에게 위자료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혼의 징표로 주고 받은 예물은 파혼한 뒤에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또 사연을 보내주신 박수지씨처럼 이미 결혼을 하고 난 뒤 이혼을 했을 때도 예물과 예단은 돌려주는 게 맞을까요.
한때나마 사랑해서 주고 받은 금품을 헤어진 뒤에 돌려받는 일은 좀 치사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결혼패물과 예단비용으로 수천만 원, 심지어는 수억 원까지 주고받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인사치레나 가벼운 선물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신랑·신부는 상대방에게 금반지, 보석, 고급시계 같은 패물을 주고받거나 예물· 예단비용 명목으로 현금을 건네기도 합니다. 이게 예물입니다.
법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예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법원은 약혼예물의 성격에 대해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라고 보았습니다. 말이 좀 어렵다고요? 쉽게 풀자면, 약혼예물이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돌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상대편 집안에 주는 물건이나 돈'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파혼이 되면 예물은 서로 돌려주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약혼의 해제(파혼)에 관하여 과실이 있는 유책자로서는 그가 제공한 약혼예물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파혼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자기가 준 예물을 상대에게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난 기사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세아(가명)씨는 자신의 약혼남 K가 학력과 경력을 속인 사실을 알게 되어 파혼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상대에게 예물(비용)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정씨에게 있습니다. K는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약혼예물은 파혼이 되면 돌려주는 게 맞습니다. 다만 파혼에 책임이 있거나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한 쪽에서는 예물반환 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결혼을 깨놓고 예물까지 돌려달라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결혼 후 이혼은 예물 못 돌려받아... 결혼 기간 따라 예외도그렇다면 결혼 후 이혼하게 되면 예물은 어떻게 될까요.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결혼한 부부에게는 예물반환 의무가 없습니다. 결혼이 성립된 이상 결혼할 것을 조건으로 주고받은 예물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좀 오래된 일이긴 합니다만, 이혼 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이혼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법정공방을 벌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혼수문제로 구박하고 친정을 비난한 것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고부갈등을 키우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내가 며느리 시집올 때 주었던 예물을 모두 돌려달라"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며느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먼저 "시어머니에게 이혼 파탄에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예물반환 주장에 대해서는 "혼인이 성립되어 상당기간 지속된 이상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준 약혼예물은 며느리의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혼법정
김용국
단, 본격적인 결혼생활이 유지되기 전에 파경을 맞았다면 조금 다릅니다. 이때는 약혼 단계에서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번엔 부잣집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재력가 집안의 남녀가 만나서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의 부모는 신랑 쪽에 예단비로 무려 10억 원을 보냈습니다. 신랑 쪽은 봉채비(신부가 몸을 꾸미는 데 쓰는 명목으로 지급되는 비용)로 2억 원을 주고 신혼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올린 지 다섯달 만에 부부는 파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서로 상대탓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금전문제 등으로 부부 사이 갈등이 있었을 때 자신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갈등을 키우고 일방적으로 집을 나간 남편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아내 쪽에선 예단비 10억 원 중 8억원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혼인의 전후에 수수된 혼인예물·예단은 혼인의 성립을 증명하고 혼인이 성립한 경우 당사자 내지 양가의 정리를 두텁게 할 목적으로 수수되는 것으로서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지는 것인 바, 혼인이 단기간 내에 파탄된 경우에는 혼인의 불성립에 준하여 증여의 해제조건이 성취되었다고 봄이 신의칙에 부합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혼인예물·예단이 그 제공자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짧은 기간 안에 파경을 맞았다면 약혼 후 파혼된 경우처럼 상대에게 예물을 반환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두 달 정도 살고 헤어졌다면 결혼생활이 유지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예물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단 이때도 부정행위, 폭력행사 등으로 결혼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은 예외입니다. 오히려 혼인파탄 원인제공으로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뜨겁게, 헤어질 때는 깔끔하게그렇다면 박수지씨는 어떨까요. 사연을 보니 딱히 누구 책임이 더 크다고 하기 어렵군요. 부부는 존중과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부부생활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데에는 두 사람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협의이혼으로 해결하는 데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 예물도 돌려주어야겠지요.
헤어질 때 예물반환을 포함하여 서로 주고받은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겠습니다. 첫째, 서로 상대에게 자기 것을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헤어진다. 둘째, 서로 받은 것을 모두 돌려준다. 어느 것이든 양쪽이 합의하는 게 상책입니다.
돈과 관련된 얘기를 하니 제 맘도 편치 않습니다. 결혼을 조건으로 거액이 오가는 일도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이혼에서 당장 부딪히는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도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법대로 하기 전에 서로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건 어떨까요.
"사랑은 뜨겁게, 결혼은 신중하게, 헤어질 때는 깔끔하게." 물론 어렵겠지요. 그래도 이게 이상적인 남녀관계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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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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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만에 이혼... 예단비 수천만원은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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