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마음 돌리려고 몰래 혼인신고했다가

[이도남 ⑫] 일방적인 혼인신고와 민형사상 책임

등록 2012.11.05 16:02수정 2012.11.0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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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32살 최창민(가명)이라고 합니다. 요즘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여성 'Y' 때문입니다. 늘씬한 외모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을 지닌 Y는 제 맘을 사로잡았습니다. 매일 사무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쿵쿵 뛰는 가슴, 떨리는 마음 가눌 길이 없는데 Y는 갈수록 차갑게 외면하네요.

제가 본디 숫기가 없어서 맘만 있었지 Y에게 제대로 가까이 가지도 못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회식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데이트를 제안했고 드디어 따로 저녁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제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잠자리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만나면서 서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Y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Y는 "우리 사이에 결혼얘기는 하지 말자"면서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고 제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애끓는 제 마음을 왜 몰라주는 걸까요.

저는 다소 충격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일단 혼인신고를 해놓고 Y의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겁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고 나면 설득하는 데도 더 낫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서든 제 이상형인 Y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란 건 알지만 제가 Y와 결혼하는 길은 이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배우자는 이상형인가요

sxc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하기, 누구나 바라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또 이상형과 산다고 한들 아무 갈등없이 행복하게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기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배우자는 이상형이었나요.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는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아니었던가요.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남녀의 정신과 육체의 결합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기 위해선 2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맘속으로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혼인의사)가 있어야 하고, 둘째 겉으로는 혼인신고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혼인의사와 혼인신고, 이 2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법률혼이라고 합니다. 부부로서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거죠. 이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적어도 법률적으로 부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결혼을 하고서 혼인신고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을 사실혼이라고 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불편이 따르겠지요. 하지만 두 사람만 좋다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혼인신고를 하건 안하건 그건 당사자의 몫입니다. 

문제는 그 반대일 때입니다. 즉 두 사람 모두 혹은 한 사람이 결혼할 뜻이 없는데 혼인신고가 된 경우입니다. 이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혼 당시에 '혼인의사의 합치'가 없었다면, 즉 결혼하겠다는 뜻이 합쳐지지 않았다면 이 결혼은 무효입니다. 형식(혼인신고)보다 중요한 건 마음(혼인의사)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짜 잡았다가 파혼... 몰래 혼인신고한 남성의 최후

상대방 몰래 혼인신고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례] 30대 남성 A씨는 동갑여성 B씨와 2년간 사귀었습니다. 둘은 서로 사랑하여 결혼까지 하기로 했지요. 드디어 날을 잡고 예식장 계약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준비를 하다가 신혼집을 누가 마련할지를 놓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부모들까지 가세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양쪽 집안은 결국 파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A씨에겐 B씨가 여전히 사랑스러웠습니다. A씨는 B씨는 물론 가족과도 상의없이 혼자서 혼인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는 혼인신고서 용지에 적힌 부부란에 A, B씨의 이름을 나란히 적었습니다. 또 미리 준비한 B씨의 도장까지 찍어서 담당공무원에게 제출했습니다. 마치 두 사람이 결혼에 동의한 것처럼 말이지요.

가족관계 서류상으로 보면 A씨와 B씨는 영락없는 부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자기도 몰래 유부녀가 되었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합니다. B씨는 A씨를 형사고소 했습니다.

A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때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지만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인정된 죄명은 무려 4가지였습니다.

혼인신고서에 B씨의 인적사항을 적고 도장을 찍은 행위는 사문서위조였고, 이 서류를 공무원에게 제출한 점은 위조사문서 행사죄가 되었습니다. 또 가족관계등록부에 두 사람이 결혼한 것처럼 허위의 사실을 기록하게 한 것은 공전자기록등 불실기재, 불실기재 공전자기록등 행사죄가 성립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공전자기록이란 공적인 전자기록으로, 관공서에서 자동차등록정보, 가족관계, 부동산등기사항 등을 정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을 말합니다.)  

A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A씨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B씨와 실제 예식장계약까지 마쳤다가 파혼하게 되자 이 사건에 이른 점 등을 참작"하여 그나마 선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결혼 합의 없었다면 '이혼' 아닌 '혼인무효' 소송으로

이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B씨는 A씨와의 결혼 기록을 지워 버렸습니다. B씨가 택한 방식은 이혼소송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혼이란 결혼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B씨는 애초에 결혼할 뜻이 없었기 때문에 A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A씨가 한 혼인신고는 B씨의 혼인의사 없이 마쳐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더해 "무효인 혼인신고로 인하여 B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명백하다"면서 위자료로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혼인무효 사유 어떤 게 있나

일방적인 혼인신고는 무효라고 했다. 그 밖에 결혼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민법 제815조(혼인의 무효)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혼인이 제809조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3. 당사자간에 직계인척관계(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사자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

민법 제808조(근친혼등의 금지)
①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혼인무효 사유는 크게 2개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당사자간에 결혼할 의사가 없었을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혼인신고나 가장혼인(결혼의사없이 혼인신고만 하는 일)등은 무효이다.

두 번째는 아주 가까운 친족간의 결혼이다. △8촌 이내 혈족사이 결혼△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는 결혼할 수 없으며, 했더라도 무효이다. 예를 들어 사촌 간의 결혼,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결혼, 양아버지와 양딸사이의 결혼은 무효이다.
A씨로서는 "두 사람이 과거에 결혼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거나 "다시 재결합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항변할 만하지만, 그랬더라도 혼인이 무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은 "혼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혼인의 합의는 혼인신고를 할 당시에도 존재하여야 한다"면서 일방당사자가 한 혼인은 무효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법원은 남녀가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혼인신고를 할 권리가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혼인의 합의란 법률혼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제하에서는 법률상 유효한 혼인을 성립케하는 합의를 말하는 것이므로 비록 양성간의 정신적·육체적 관계를 맺는 의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혼인의 합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결국 A씨는 B씨의 마음을 돌리기는커녕 전과자가 되고 위자료까지 물어주어야 했습니다. 원래 혼인신고는 두 사람이 가야 하지만 상대의 신분증만 있으면 혼자서도 혼인신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입니다. 

서류상 부부되기보다 마음을 여는 게 우선

사연을 보내주신 최창민씨, 잘 보셨나요. 몰래 한 혼인신고를 과한 애정표현 정도로 여겼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최창민씨는 일단 혼인신고를 한 뒤 설득을 하겠다고 하셨는데요. 물론 법원 판결 중에는 '일방적인 혼인신고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상당한 기간 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혼인의 실체관계를 유지한 경우엔 유효한 혼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례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좌우하는 결혼에서 이런 요행을 바라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건 마치 21세기에 선녀옷을 숨겨놓고 선녀와 함께 살게 된 나무꾼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혼은 시작부터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하겠다는 의사가 없으면 안됩니다. 서류상으로 부부가 되는 것보다 먼저 상대가 마음을 열도록 애쓰는 게  급선무입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이성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정도에 따라야 합니다. 편법을 썼다가는 사랑을 영원히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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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서적 <생활법률 상식사전>(2010), <생활법률 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이도남 #혼인신고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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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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