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용환신 세 번째 시집모두 4부에 94편이 실린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하고 아픈 이웃들 삶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뒤틀리는 역사까지 매섭게 꼬집는다.
화남
이젠, 저 강에 붙여진 이름 그 하나만을 위한 노래 불러야지.때리고 들쑤셔도 소리 없이 흐른다고,밟고 짓이겨도 말없이 견딘다고 붙여진수많은 이름 다 지우고 이젠, 강이란 강 모두 불러내어본래의 이름 하나 그 하나만을 위한 노래 불러야지 -54쪽, '강 1' 모두'눈 밝고 귀 밝은' 국민들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에서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물막이 사업을 바라보는 시인 마음은 어둡다. "강은 산을 넘거나 / 바다 밟지 않으니 / 그냥 거기 그렇게 있게 하라"(강 2)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강을 죽이는 굴삭기 삽날은 더 무지막지하고 더 매섭기만 하다.
누가 "휘돌아 흐르는 강"을 막는가. 누가 강에게 "잠시 쉬어간다고 시비"를 거는가. "먼저 왔어도 / 앞서 혼자 가는 법 없이 / 모두 함께 떠나니, / 어깨 맞대고 / 서로 서로 가슴" 품고 가는 그 강을 누가 억지로 짓밟는가. 시인은 "본래의 (강)이름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강을 부른다. 강을 "때리고 들쑤"시고, "밟고 짓이기"는 모든 낮도깨비 같은 이들이 강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라는 듯이.
시인은 4대강 물막이 공사를 막기 위해 강으로 달려가 강을 살리는 시를 굴삭기처럼 내세우며 속만 끙끙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주한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는 대추리와 미공군사격장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매향리에 가서도 시를 '저항의 깃발'처럼 꽂는다. 그렇게 싸우지 않으면 이 나라 강산 모두가 쑥대머리 풀고 꺼이꺼이 울면서 죽어갈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오매향리에도 사람이 살았지달뜬 팔월의 바람도 불었지 담장마다 넘나드는 속삭임들꽃바람에 멍울졌던 그곳흰옷 입은 사람들이 울부짖을 때녹두장군 도포자락도 휘날렸지 -122쪽, '매향리 2' 모두용환신 시인이 지닌 눈은 깊고 넓다. 시인은 4대강과 대추리, 매향리를 인방처럼 넘나들면서도 도시 빈민들 속 쓰린 삶과 다문화 가족들 초라한 하루하루를 놓치지 않는다. 몇 해 앞 경남 창원 천주산 자락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불도를 닦던 그 스님이 "시인은 이 세상 지킴이자 예언자"라고 들려줬던 그 말씀이 아마 용환신 시인을 두고 빗댄 것만 같다.
도시 빈민들 고단한 삶을 다룬 시들로는 "고물 줍는 꼬부랑 노인 다리 사이 / 밤낮 없이 보름달 뜨네"(보름달)라거나 "술만 마시지 말고 / 밥도 한술 뜨시라"(술, 그 즐거운 반역), "우리 동네 골목 끝 희망이발관 / 오늘, 사십년 나무간판 내렸다네"(희망이발관), "홀로 사는 이씨 노인 / 이번 주엔 오십 명 밖에 던져져 / 퇴계선생 대면할 기쁨 놓쳤다네"(이씨 노인 교회에 간 까닭) 등이 그러한 시편들이다.
다문화 가족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서글픈 삶을 굴비처럼 엮은 시편들은 "바다보다 더 깊은 지하방에 누워 / 오늘밤도 깊도록 휴대폰 가슴에 품고 / 연변가족과 함께 하네"(삼겹살집 중국동포 아줌마),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오 / 언제나 / 살아 있음을 강요당하는 / 어지러운 출렁임 속 / 바다는 먼 옛날이 되었다오"(산 오징어), "날 수 있다는 것 / 그것은 희망이고, 날아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비행기) 등이다.
"눈 뜬 장님"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향해 꽂는 '시의 주사바늘'가면이지,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모든 것 다.뜯어 붙이고 붙여 보지만 가면 속 그 끝있어야 할 사람사라진 세상, 익숙해진 가면놀이에모두 눈 뜬 장님 되었네 -105쪽, '가면' 모두시인 용환신 세 번째 시집 <아직도 노래할 수 없는 서정을 위해>는 "익숙한 가면놀이에 / 모두 눈 뜬 장님"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를 향해 꽂는 '시의 주사바늘'이다. 시인은 시란 주사바늘을 들고 물질에 중독되고, 정치놀음에 중독되고, 미국 신식민주의에 중독된 사람들 힘줄을 찔러 해독하면서 왜 시인들이 아직도 서정을 노래할 수 없는 지에 대해 피울음을 꺼억꺼억 뱉어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가을 구름처럼, 잠든 바람처럼, 휘돌아 흐르는 강처럼 살고픈 선량한 시인"이라며 "그러나 쑥고개 대추리 매향리 등 세상의 아픈 곳 찾아다니며 밟히고 태워도 다시 일어서는 풀잎처럼, 맨 가슴으로 버티는 바위처럼, 제 머리 두드리는 목탁처럼 우리 시대를 질타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시인 홍일선(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은 "화려한 옷을 입은 시를 제조하는 시공은 많으나, 시를 줄탁동시(啄同時)로 하여 말씀을 낳으시는 시농(詩農)이 귀한 시절, 애오라지 시인은 '몸으로만 말하고 / 몸으로만 다가가 / 누구에게나 같은 꿈이 되라하는 / 당신을, / 오늘은 하늘이라 부르겠네'라며 이 나라에서 버림받은, 상처받은 흙이야말로 우러러 받들어야 하는 하늘(님)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시인 정수자는 "시인은 '더불어'의 세상을 도모했다. 장시집 <겨울꽃>에는 그런 바람이 크게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는 가을바람이 더 풍기는 듯하다"고 입을 뗀다. 그는 "어둠의 멱살을 잡던 여름날의 함성들이 걸러진 것일까. 생의 오후에 들며 수긍이 가는 것일까"라며 "하지만 '따스한 꿈에 취해 / 서정의 밭으로 가버렸'다는 개탄이나, '저 군홧발보다 더 두려운 / 잊혀진 분노를' 어찌할 것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뜨겁다"고 적었다.
시인 용환신은 1949년 수원에서 태어나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회(현, 한국작가회의) 기관지 <민족문학>을 통해 연작시 '가정방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우리 다시 시작해 가자> <겨울꽃> 등이 있으며, 합동시집도 꽤 펴냈다. 시인은 1987년 6월 민주시민항쟁을 맞아 '수원민주문화운동연합'을 만들어 지역문화운동에 밑불을 지폈다.
같은 때 '경기남부민족문학협의회'도 만들어 지역에 갇혀 있던 문학을 일깨우는데 힘을 쏟았다. 그 뒤 <사랑과 땅의 문학> 편집동인을 맡아 실천문학운동을 이끌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지금은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노래할 수 없는 서정을 위해
용환신 지음,
화남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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