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은행과 집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

서민대통령과 전월세인상율상한제(1)

등록 2012.11.14 20:32수정 2012.11.1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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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문재인 대선 예비 후보는 주거 복지 공약을 제시하면서, 전월세인상률상한제 도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전월세 인상률 상한을 몇 년에 몇 퍼센트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안철수 대선 예비 후보는 <안철수의 약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전월세인상률상한제는 없었다. 앞으로 양 후보 간의 정책 단일화 협상에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월세인상률상한제가 결코 사장되지 않고 단일화 정책 공약으로 확실하게 발표되기를 바란다.

세입자 주거권 유린하는 사회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을 유린하는 사회이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폭력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 소위 민주화 시대라고 하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까지도 대부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는 적어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에 관한 한 기이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 중요한 원인이 지식인들이 무주택 서민의 피눈물을 대가로, 부동산 투기 불로소득을 얻는데 동참해 왔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강남 우파'와 '강남 좌파'의 지식인들은 적어도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부패해 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지식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하고, 무주택 서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하며, 이제라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무주택 서민의 피눈물 나는 실제 사례들을 들어 제시하겠다.

1990년: 전월세금 폭등 때문에 17명 자살

지금까지 고위공직자들을 비롯한 부유층이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늘려갈 때, 무주택 서민들은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집값과 전월세금의 폭등으로 큰 고통을 당해왔다. 부동산투기 광풍이 전국적으로 몰아친 1980년대 말, 그 광풍은 집값과 전월세금의 폭등으로 이어져, 결국 1990년 봄 이사철에는, 폭등한 전월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된 세입자 17명이 그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었다(출처, MBC <PD수첩> 첫방송 "하늘로 이사 간 사람들"). 이처럼 부동산 투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적인 경제범죄' 행위인 것이다.

이 당시 자살한 사람들 중에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동반 자살한 기독교인 A씨의 가정도 있었다. 필자는 그 유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유서는 필자가 그 후 토지정의운동과 주거권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A씨는 유서에서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절규하고 있다. 그리고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고민에 빠져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그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토로하고 있다.


A씨는 "정치하는 자들, 특히 경제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 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무주택 서민의 고통과 비애는 1990년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도권의 전월세금이 폭등했던 지난 2002년 1월, 한 신문에는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할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손수레를 끌면서 폐지와 고물을 모아야만 했고, 또 오른 전월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정주부들이 산모 도우미나 파출부로 나서야만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박창섭 기자, "집 내몰리는 사람들(중)/'파출부로 애써 번 돈 오른 월세로 고스란히 나가'", <한겨레신문>, 2002-01-22, 1면). 이처럼 전월세금 폭등은, 가난한 할아버지를 추운겨울에 손수레를 끌게 만들고, 가정주부를 집밖의 부업으로 내모는 '강도 화적의 경제범죄' 현상인 것이다.


2012년: 폭등하는 전월세금은 은행과 집주인에게

필자가 사는 서울 외곽 도시의 서민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 3년 동안 1년에 1000만원씩 폭등해 왔다. 이 지역은 적어도 필자가 거주해 온 지난 6년 동안 지하철역이나 도로나 명문 학교나 대형 병원이 인근에 새로 생기지도 않았고, 아파트 자체가 개량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아파트의 사용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어떤 변화도 없었는데 전세금은 이렇게 폭등해 온 것이다.

이 폭등하는 전세금을 마련하려면 매년 1000만원씩 따로 저축해야 한다. 그것이 서민에게 쉬운 일인가? 필자는 이 지역에서 세입자가 내는 전월세금이 얼마이며 그것을 누가 얼마만큼 가져가는지 따져보았다.

2012년 11월 현재, 이 지역의 공급면적 73.51㎡ 전용면적 54.91㎡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가격은 1억 5천만 원, 전세 가격은 1억 1500만 원, 보증부 월세 가격은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다(daum 부동산에서 검색). 이 자료를 기초로 아래 사항을 계산해 보았다.

- 전월세 전환율(전세의 월세 전환 이율): 월 0.5882%(=50만 원/8천 5백만 원), 연 7.0584%(=0.5882%*12개월)
- 보증금 3천만 원이 월세로 전환될 경우의 월세 가격: 18만 원(=3천만 원*0.5882%)
- 보증금 없는 월세일 경우의 월세 가격: 68만 원(=50만 원+18만 원)
- 1년간 월세의 합: 816만 원(=68만 원*12개월)
- 월세/아파트 가격: 0.453%(=68만원/1억 5천만 원)
- 1년간 월세의 합/아파트 가격: 5.44%(=0.453%*12개월)

집주인이 아파트 가격 1억 5천만 원을 전액 은행에서 대출받았다고 가정할 경우, 2012년 9월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 금리 연 4.86%, 예대 마진(=대출이자-예금이자) 연 1.95%를 적용하면(이 경우 예금 금리 연 2.91%=4.86%-1.95%), '1년간 월세의 합/아파트 가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1년간 월세의 합/아파트 가격 = 예금 금리 + 예대 마진(은행) + 임대 마진(집주인)
- 1년간 월세의 합/아파트 가격 5.44% = 2.91% + 1.95% + 0.58%
- 1년간 월세의 합 816만 원 = 436만 5천 원 + 292만 5천 원 + 87만 원

곧 집주인이 아파트 가격 1억 5천만 원 전액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경우, 무주택 서민이 내는 연간 월세 816만 원으로부터 은행이 가져가는 예대 마진은 292만 5천 원이고, 집주인이 가져가는 임대 마진은 87만 원이다.

만약 집주인이 아파트 가격 전액이 아니라, 아파트 가격에서 세입자로부터 받는 전월세 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받는다면, 그 대출금액이 적을수록 은행이 가져가는 예대 마진은 줄어들고, 집주인이 가져가는 임대 마진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월세 보증금을 은행에 예금하고 그것을 은행이 다시 타인에게 대출할 경우에 은행이 받는 연간 예대 마진까지 합하여 계산하면, 은행이 가져가는 예대 마진은 결국 292만 5천 원으로 동일하다.

한 마디로 무주택 서민이 내는 월세를 은행은 숨어서 가져가고, 집주인은 드러내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월세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려면, 은행이 받는 예대 마진을 현재 1.95%에서 예컨대 1%로 인하시키는 정책이 동반되어야 하고, 또한 전월세인상률상한제를 실시해서 집주인들이 받는 임대 마진을 축소시켜야 한다.

더불어 국가가 은행과 집주인의 역할을 하되, 운영비용을 최소로 하여 거의 무료에 가깝게 실행해서, 예대 마진과 임대 마진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실상부한 공공임대주택이다(만약 국가가 공공임대주택의 세입자로부터 최소한의 운영비용 외에 예대 마진과 임대 마진을 받는다면 그것을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하는데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가 재정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 나가고, 동시에 은행의 예대 마진을 인하하기 위한 정책과 집주인의 임대 마진을 인하하기 위한 정책, 곧 전월세인상률상한제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전월세인상률상한제에 대한 의문과 해명을 다루고자 한다. 전월세인상률상한제에 대해, 보수적인 학자들뿐만 아니라 소위 개혁적인 학자들도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월세인상율상한제 #전월세 #전월세 상한제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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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며 기독교학 박사이다.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이며, 희년사회 연구위원이다. 희년 교회, 희년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토지 정의와 주거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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