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희망이 보인다? 난 불편하다

[지방분권 ②]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을 주장하며

등록 2012.11.23 11:19수정 2012.11.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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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반쪽 자치'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재정권과 인사권 등이 여전히 중앙정부에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체제의 폐해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과 공동으로 지방자치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말]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넘는 152석(비례대표 2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4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당직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넘는 152석(비례대표 2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4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당직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유성호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야권연대의 허망한 패배로 귀결되었을 때, 낙망 중에도 12월 대통령선거의 승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희망의 근거를 붙잡으려고 했다.

첫째, 총투표수로 따지면 야권연대의 표가 박근혜씨의 표보다 더 많았다는 점. 둘째, 충청과 강원에서 거의 전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는 20~30대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야권연대가 압승을 거두었다는 점. 이중 특히 후자는 대통령선거의 승패가 결국 수도권에서 갈리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통념에 힘입어 야권연대의 성공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좀 더 강력한 논거로 부각되기도 했다.

수도권 표에 대한 확대해석,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나는 이와 같은 희망적 해석에 대하여 중대한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그러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에 의해 제시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다. 단언컨대, 수도권의 표가 대통령선거의 승패를 갈랐던 종래 대한민국의 정치패턴은 뿌리 깊은 지역감정과 중앙집권주의적 정치편향의 기묘한 공생이 낳은 결과였다. 지역감정의 골을 따라 지방을 분열시키고 그처럼 분열된 지방을 중앙집권적으로 동원하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았다면 어찌 수도권의 표가 대통령선거의 캐스팅 보트로 작용할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이 찾은 희망의 근거가 이와 같은 구체제의 정치패턴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서 2013년 체제를 수립하자는 것이 이번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민주개혁세력의 기본 입장이라면, 그 전략가들로서는 당연히 뿌리 깊은 지역감정과 중앙집권주의적 정치편향의 기묘한 공생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대체할 것인지에 관해서 실현가능한 전망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의외의 패배를 당했다고 해서, 곧장 구체제의 정치패턴이 그대로 존속하게 될 것을 전제로 정치공학적 계산에 매몰되는 것은 옳지 않다. 설혹 그러한 계산이 선거의 승리를 예측하게 만들더라도 그 정치적 의미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음으로 그러한 정치공학적 계산에 전제된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한 이해에도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정치세력이 지방민의 표를 공략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점을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그동안 출향상경한 지방 출신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고향의 표를 몰아가는 전형적인 수법은 장밋빛 개발공약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뉴타운 개발공약 등을 통해 수도권의 지역주의를 적극적으로 자극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세종시 건설의 백지화를 추진하면서, 지방민들은 종래와 같은 장밋빛 개발공약을 순진하게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장밋빛 공약'을 믿지 않는 까닭


 2011년 3월 31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되자 당시 한나라당 당원들이 분노해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2011년 3월 31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되자 당시 한나라당 당원들이 분노해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조정훈

내가 사는 영남권의 경우로 말하자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까지 제시했던 동남권 신공항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영남권 전체의 민심을 철저하게 분열시킨 뒤, 마지막 순간에 사업 자체를 백지화했던 것은 지방민의 시각에서 보자면 일종의 배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지방민들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선거 때만 되면 중앙정치세력이 내놓곤 하는 장밋빛 개발공약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중앙정치세력의 장밋빛 개발공약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각 지역이 조기에 자력갱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지방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도권의 지역주의를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중앙정치세력이 지방을 배반하는 일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상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방의 정치적 상황 변화는 중앙정치세력이 지방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종래의 장밋빛 개발공약의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이 제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1987년 체제의 극복과 2013년 체제의 수립을 염원하는 민주개혁세력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득이란 지난 20여 년 동안 가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영남권의 표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고, 실이란 반대로 가히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였던 호남권의 표를 박근혜씨의 세력에게 내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첫 번째 승부처는 이처럼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방의 정치적 공간에 새롭게 열린 가능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대한 개발공약과 함께 지방 전체의 자력갱생을 확실히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이 제시된다면, 그리하여 예를 들어 박근혜 후보가 호남을 끌어안거나 야권연대의 후보가 영남에서 약진하게 된다면, 이번 대통령 선거의 승부는 사실상 거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종전처럼 대통령선거에서 수도권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상황은 지방 전체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에 있어서 양측이 모두 지지부진하거나 양측이 모두 전력을 다해 경쟁하게 되는 경우에만 도래하게 될 것이다.

지방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진심으로 고대하는 상황은 당연히 맨 마지막에 언급한 상황이다. 박근혜 후보와 야권연대의 후보가 서로 상대의 지역적 기반을 위협하는 가운데, 지방 전체의 자력갱생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두고 수도권의 20~30대에게 치열하게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 말이다.

불붙은 지방분권 논의, 어떻게 담을 것인가

아직 상상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만약 이러한 상황이 구현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대한민국의 헌정사에 신기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파트 숲에서 자라난 수도권의 20~30대를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이 지방 전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내세워 치열하게 설득하는 이 구도야말로 지난 60여 년간 대한민국의 헌정사를 압도해 온 중앙집권주의의 편향을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가운데 분권과 자치를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기에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과 패기가 덧붙여진다면 차제에 분권과 자치의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한반도의 재통일 방안을 설계하는 단계에까지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최근 지난 십여 년간 지방분권운동을 추진해 온 지방민들 사이에는 현행 헌법 제8장의 지방자치조항들을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권력다툼으로 점철되어 온 종래의 개헌논의를 접어두고, 오로지 헌법 제8장에만 집중하여 지방자치조항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정상화하자는 논의가 불붙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의 제8장은 고작 두 개의 조문(제117조와 제118조)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가 제정하는 '법령의 범위 안'으로 지방자치를 축소시키고 있는 까닭에 소위 '2할 자치'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를 진전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애물로 지적되어 왔다.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은 헌법 제8장에다가 풀뿌리 자치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임을 확인하면서 소위 '보충성의 원리'를 선언하는 조항,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형태를 규정하는 조항, 지방자치단체에 실질적인 자주입법권과 자주재정권을 부여하는 조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합리적인 재정조정제도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지방자치단체가 국정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와 절차를 규정하는 조항 등을 추가함으로써 지방 전체의 자력갱생을 헌법적으로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느라 1987년 헌법개정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분권과 자치의 이념을 헌법 제8장의 원포인트 개정을 통해 전면화함으로써 지방을 살리고 통일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개혁세력이 지방의 자력갱생에 관하여 진지하고도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왕에 지방민들로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를 깊이 고민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국회의원 총선거의 패배가 예상되자 일사불란하게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던 것에서 보듯, 박근혜 후보로 대표되는 세력은 비상을 일상에 앞세우고, 집권을 분권에 앞세우며, 규제를 자율에 앞세우는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승부근성과 맞서려면... 

그렇기 때문에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이 체질적으로 자유지향적인 수도권의 20~30대에게 박근혜 후보가 다가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장담하는 것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근혜 후보의 세력이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놀라운 승부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박근혜 후보가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을 선점하여 지방민의 지지를 석권해 버림으로써 아예 수도권의 20~30대가 캐스팅 보트를 쥐는 상황 자체를 회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난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 패배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전략가들이 애써 찾아낸 희망의 근거는 제대로 검증해 볼 기회조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하려는 대통령 예비후보들은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론을 깊이 숙고함으로써 지방 전체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첫 번째 승부처에서 실기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국운 기자는 한동대학교 교수(헌법/법사회학)입니다.
#분권 #지방자치 #대선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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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후 지난 25년간 자치와 분권의 헌법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해 온 분권국가세력은 2012년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이와 같은 헌법적 제약을 과감하게 돌파할 것을 국민들 앞에 제안한다. 제안의 골자는 헌법 전문과 제1조의 개정을 통하여 자치와 분권의 헌법정신을 천명하고, 그 기조 위에서 헌법 제8장 ‘지방자치’의 전면적인 개정을 통하여 분권국가의 체제를 명실상부하게 갖추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중앙집권적 정치세력은 지난 수년 간 헌법개정논의를 독점해왔음에도 중앙권력 내부의 분배구조를 둘러싸고 무익한 논쟁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분권국가세력은 이처럼 소모적인 권력구조개편론을 중앙집권주의를 강화하려는 권력놀음으로 비판하면서 차제에 이를 과감히 우회하여 지방자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원포인트 헌법개정을 달성함으로써 국가혁신, 지역혁신의 일대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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