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이 줄었다... 그런데 이게 빠졌다

임기말, 정부의 문화복지 정책에 역행하는 국토부의 배짱

등록 2012.11.30 18:26수정 2012.11.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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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토해양부는 새로운 주거 경향에 맞는 주택건설기준안 마련을 위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전부 개정령안의 입법예고를 마치고 법제처 심사를 추진 중에 있다.

개정취지를 보면 임기 말임에도 국토부 직원들의 적극적인 업무 추진에 고개가 숙여진다.


"인구·가구 구조와 사회 변화에 따라 주거 수요가 다양해지고, 주택의 양적 공급확대, 기술개발 등에 따라 주택건설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획일적인 복리시설 설치기준을 폐지하는 등 다양한 수요 특성에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발전된 기술수준을 규정에 반영하면서 타 법령과 중복된 규정이나 디자인을 제약하는 과도한 규제는 폐지하는 한편, 최근의 주택 트렌드 변화에 따라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뒷받침 할 수 있도록 주택의 품질기준과 안전 확보 기준을 마련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택건설기준으로 전면 개편하고자 함."

국토부가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위해 과도한 규제를 폐지하려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제도개선이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내용도 있어 국토부의 적극적인 업무 추진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도 싶다. 예를 들면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주택 바닥을 일정 두께 이상이 되도록 한 것이나 주택단지 안에 설치해야 하는 안내표지판의 규격과 설치 위치 등을 폐지하는 것, 주택단지 각 동의 지상 출입문 등은 전자출입시스템을 갖추도록 한 것, 지하층이 1층 세대의 전용으로 사용하는 구조일 경우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범위를 확대하는 내용 등이다.

국토부는 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기 전인 지난 9월 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공동으로 공청회를 개최하였으나 문화나 복지 관련 단체에는 연락도 없이 건설 관계자들만 초청하여 은근슬쩍 개최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대다수 언론은 이제야 층간소음이 줄어들게 되었고, 입주민들의 수요에 따라 공동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개정안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층간소음 줄어들게 되었다지만...


내용인 즉 이렇다. 개정안에 '주민공동시설 설치 총량제'가 등장한다. 1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세대 수에 2㎡를 곱한 면적 범위 내에서 주민의 수요를 고려하여 경로당, 어린이집 등 주민공동시설을 설치하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현행 규정상 주민공동시설은 운동시설, 작은도서관, 경로당, 어린이집 등으로 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에서는 기존의 주민공동시설 외에 경비실, 관리사무소, 어린이놀이시설, 공부방, 지역아동센터가 새로 포함된다.

반면에 주민공동시설 설치면적인 세대 수에 2㎡를 곱한 면적은 기존 시설 기준 면적보다 20%이상 감소한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설치면적의 1/3 이내에서 증감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1/3 범위에서 설치면적을 감소할 경우 40% 넘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규정에 담고 있던 주민공동시설별 세부설치기준을 동 규칙으로 이관하면서 실내외 시설 구분 없이 최소 설치 기준만을 정하고 있어, 야외에 운동시설을 대폭 설치하거나 특정 선호 시설만을 과다하게 설치할 경우 일부 실내 문화 복지 시설은 설치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분양 시 주민공동시설 총량제 범위 내에서 주민을 유혹할 수 있는 골프연습장, 헬스장, 테니스장 등 특정 시설만을 설치할 수도 있어 자칫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한 시설은 빠지고 설치한다 하여도 그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토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자체 조례로 특정 시설을 의무 설치 시설로 정할 수 있고 그 시설의 최소면적을 정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법에서 의무 설치조항을 폐지하는 마당에  지자체에 이를 규정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다.

헬스장에 밀려 노인·어린이 시설은 사라질 수도

동 규정 개정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시설과 계층은 뻔하다. 현재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 건설 시 작은도서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되어 있어 낙후지역이나 저소득층 밀집지역 아파트 어린이들이 그나마 집근처에서 쉽게 책을 접할 수 있었으나 이마저 어렵게 되었다.

100세대 이상에 설치토록 한 경로당이나 300세대 이상에 설치토록 한 어린이집도 처지는 마찬가지이다. 국토부의 어떠한 설명에도 최근 발행되는 아파트 분양 홍보물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아파트 지하층에 멋들어진 골프연습장, 헬스장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작은도서관이나 경로당은 한 쪽 구석에 구색만 갖추고 있고 그나마 작은도서관은 공부방으로 변질되어 설치되고 있다.

극단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법이 개정되면 달동네 아파트 부부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멀리 떨어진 값비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학교에 다녀온 초등학생 자녀는 엄마 아빠 일 나가고 없는 빈집에서 TV나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국토부에서 궁여지책으로 들고 나온 변명은 정부에서 사유재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과 주민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작은도서관, 경로당, 어린이 집이 저출산, 노령화 사회,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서 건립을 유도해야할 시설들임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주유소도 사유재산인데 소방법 규정을 완화하여 주택가 담장에 붙여서 건립하고 소화기를 비치할지 말지도 주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부처간 이기주의와 정부와 국회 간 불협화음도 커다란 문제점이다. 국회에서는 금년 2월 의원입법으로 작은도서관 진흥법을 제정하여 지난 8월 18일 시행되었다. 제정이유를 보니 "1960년대 새마을문고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은도서관은 단순한 독서공간의 의미를 넘어 지역 주민의 생활문화 복합공간으로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어 우리나라 지식발전 인프라 제고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여 왔으나 작은도서관 진흥을 위한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정립되지 못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미흡하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근거 등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작은도서관의 진흥에 기여하고 생활친화적 도서관문화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것임"으로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작은도서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한 주택건설 규정을 폐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니 국토부 직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처 이기주의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국토부는 이제라도 개정안에서 주민공동시설 총량제 규정은 삭제하고  층간 소음 해소 등 실제적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여 정권 말 친서민, 문화복지 정책의 후퇴나 건설업자를 봐주기 위한 법 개정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작은도서관 #국토해양부 #주택건설기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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