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표지
21세기북스
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 걸러 한 번씩 돈 빌려 가라는 대출 상담 전화가 온다. 그 상담사들도 힘들게 먹고사는 임시 계약직이라 하니 귀찮다고 함부로 전화기를 끄기가 쉽지는 않다. 누군가는 돈이 남아돌고 누군가는 돈이 필요하니 어쩌다가 대출거래가 성사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돈과 빚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흔히 돈을 자본주의의 혈맥이라고 한다. 따라서 돈줄이 막히면 실물 자본주의 경제는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동맥경화증에 걸릴 것이라 말한다. 돈이 돌아야 시스템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은 빚에서 나온다. 빚을 져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빚 때문에 숨통이 막히는 사람, 급기야 목숨줄을 끊는 사람도 있다. 빚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당신 지갑 속의 돈은 누군가의 빚인 것이다.
이자율이 낮다는 것은 돈값이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값이 싸니 주가와 부동산이 대세 상승할 거라 기대하면서 누구는 주식 투자를 했고 누구는 부동산 투자를 했다. 빚을 져서라도 부동산을 구매하지 않으면 영영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이참에 별장을 마련하자는 부푼 기대감 속에서, 자신도 수많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섣부른 환상 속에서 많은 이들이 기꺼이 대출을 감행하였다.
물론 물가상승률과 대출이자를 넘어서는 부동산값과 주가의 대세 상승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1990년대 일본이 그랬고, 2008년 미국이 그랬다. 보수주의 정부들이 감행한 감세정책은 부자들의 단기성 투기자본 마련에 일조하였고 금융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를 기치로 한 탐욕적 투기 자본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빚으로 거품의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하지만 빚으로 쌓은 모래성은 어느 순간 무너지게 마련이고, 결국 이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금융 위기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스페인이 모두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 속에서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때, 이명박 정부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국가들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기는커녕 감세와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등 실패한 정책마저 추종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앞 수레가 벼랑에서 추락하면 뒤따라가던 수레는 멈춰야 한다. 하지만 앞 수레가 벼랑에서 떨어지고 그 추락의 결과가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계속 벼랑 끝으로 달려가서 얻은 것은 결국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뿐이다.
내수 버리고 재벌 위주 수출 정책 취한 이명박 정부수출 지상주의적인 외화 획득 경제 구조는 항상 올바른 것일까? 한국의 경제 구조가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우리는 학교, 언론 등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대기업의 수출길이 막히면 국가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으면 글로벌 금융 위기에 매우 취약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의 저자 박종훈(KBS 경제전문기자)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했던 중상주의 정책과 닮았다. 중상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당시 화폐 역할을 했던 금과 은을 더 많이 축적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당시 유럽 국가들은 최대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등 더 많은 금화를 벌어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줄임) 재벌에 대한 정책 또한 중상주의 시대의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줄임)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당시 중상주의에 따른 정경유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줄임) 즉, 강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탄압하는 당시 중상주의 정책 기조에 반발해 정부가 강자만 보호하려면 차라리 시장에 맡기라고 비판한 것이다.(153-154쪽)수출을 통해 외화를 더 많이 쌓았다고 국력이 더 커지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 생산과 소비, 투자가 함께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부가 증대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마치 고환율 정책으로 이득을 본 재벌들이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투자에는 인색한 우리의 현실과 유사하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회복했는데도 중산층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선성장 후분배'라는 구호를 외칠 것인가.
이제는 수출만 잘 되면 경제가 성장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이에 따라 소비도 증대될 것이라는 안일한 수출 지상주의적 정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하우스푸어', '렌트푸어'로 중산층의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수를 늘릴 것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이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복지국가의 상징 스웨덴은 한국보다 두터운 중산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전 소득만 놓고 보면 스웨덴은 멕시코만큼이나 부의 편중이 심한 나라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OECD 자료를 기초로 저자가 분석한 자료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