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남소연
박근혜의 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지금까지 두 차례 있었던 대선후보 TV토론에서였다. 1차 TV 토론회를 보고서야 박근혜가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었음을 알았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2차 TV 토론을 보고서야 박근혜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박근혜를 한 번도 제대로 '검증'한 적이 없었다는 것 아닐까?
5년 전 한나라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였고 그 뒤 계속해서 한나라당의 2인자로 살아 왔음에도, 그리고 지금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나섰음에도 그 오랜 세월 동안 정작 제대로 된 '박근혜 검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은 대단히 모순적인 사실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대선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한 목소리로 '고강도 검증'을 예고 했었다. 실제로 문재인과 안철수는 저축은행 청탁의혹이나 다운계약서 작성 등 털어서 먼지 나올 때까지 검증이 계속됐다.
만약 언론에서 미리 박근혜를 그렇게 고강도로 검증해 주었더라면 박근혜 후보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투표일을 불과 열흘도 안 남겨 둔 시점에서야 알게 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입장에서도 미리 고강도 검증을 받았더라면 공중파 TV 토론에서 자신의 의료정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언론이 박근혜를 그렇게까지 고강도로 검증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원래 그들의 편에서 그들과 함께 권력을 향유했던 신문사들과, MB 정부의 하수인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점령해 버린 공중파 방송사들이 '자기편 수장'을 몰아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언론사들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기득권층에 빌붙어 사욕을 탐하는 자들이 중요한 요소마다 자리 잡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같은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가장 공명정대해야 할 법원에서도 여전히 편파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법조인이 요직을 꿰차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MB 정부 내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4대강이나 천안함 사건에 대해 혹세무민을 서슴지 않았다. 후보 간 TV 토론 뒤 종편방송에 모여 앉아 낯 뜨거운 박근혜 찬양에 나선 것도 이들 '전문가'들이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특히나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횡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총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밝혔듯이,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
관련기사: 두개나 가진 박근혜, 이대로면 대선도 이긴다 ) 한마디로 말해, 보수는 열에 아홉을 잘못해도 눈감고 넘어가는 반면 진보는 열에 하나만 잘못해도 사단이 나는 불공정함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열거하기도 힘든 '이중잣대' 이런 이중잣대는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박근혜의 국민대통합을 칭송하던 사람들이 문재인의 야권단일화나 거국내각은 야합이라고 비난한다. 노무현의 비서실장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사람들이 유신의 퍼스트레이디한테는 아무런 말이 없다. 박근혜의 어설픈 과거반성은 거룩하게 받드는 사람들이 문재인의 참여정부 반성에는 그러면 왜 대선에 나왔냐고 트집을 잡는다. 정치적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았던 사람들이, 정권이 교체되면 이념논쟁만 일삼을 것이라고 비난한다.
문재인의 NLL 사수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사람들이, 박정희가 휴전선 지키던 포병부대 빼돌려서 육군본부를 장악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보편적 복지로 부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한사코 부자증세는 반대한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복지예산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투표시간 연장에 필요한 100억 원은 융통하지 못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후보검증을 하자던 사람들이 지난 13일에는 방송사의 양자 TV 토론을 끝내 거부했다.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아서 모두 여기에 옮겨 적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공정하고 공평무사한 대통령 선거인가? 왜 아무도 이런 거짓과 기만과 위선을 고발하지 않는 것인가?
한국 사회의 이 어이없는 모순은 지난 4일 1차 TV토론이 끝난 뒤 '다카키 마사오'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던 일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나는 그 현상을 보면서 문득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화신 '볼드모트'가 떠올랐다. '볼드모트'는 모든 마법사들이 두려워해서 그 이름조자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사람(He who must not be named)'으로 불렸다.
'다카키 마사오'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이었다. 박정희의 공과 과를 함께 평가하자는 사람들도 혈서를 쓰면서까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온 다카키 마사오를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가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에게 대한민국 훈장을 수여할만큼 서로가 각별한 사이였다는 사실도 평가되지 않았다. (
관련기사: 일본 극우파와 박근혜가 나란히? 그것만은.... ) 한일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온 국민이 응원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다카키 마사오'가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