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총동문회 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주장] '박근혜 반대 서강 동문 서한'에 대한 총동문회 입장을 톺아본다

등록 2012.12.18 08:38수정 2012.12.1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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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동문의 온라인 서명에 대한 서강대 총동문회 입장>이라는 글을 보았다. 여기서 '일부 동문의 온라인 서명'이란, <박근혜 동문의 청와대 입성을 반대하는 서강동문 1631명 공동서한>을 가리키는 것 같다.(공동서한 보기)

이 '공동서한'은 그 주장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해서 호오를 따질 일이지 시비를 가릴 글은 아니다. 반면 '총동문회의 입장'에서는 시비를 가려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대선과 꼭 관계가 없더라도 이런 글은 동문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톺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동문의 온라인 서명에 대한 서강대 총동문회 입장>

최근 일부 동문들이 서강의 이름으로 서강 동문의 한 사람인 특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발표하고 동문들의 서명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은 마치 서강동문 전체가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 첫 문장에서 총동문회가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또 적시하고 있듯이, '일부 동문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과, 그것이 '동문 전체!'가 '조직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에는 천지간의 차이가 있다.

일부 동문들은 항상 공동으로 무엇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총동문회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런 일이 전체가 조직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비쳐지면 문제가 될 여지는 있다.

그런데 저 공동서한은 사람 숫자를 정확히 기재해서 그렇게 생각될 여지가 거의 없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서강대 동문들은 대부분 박근혜 동문의 당선을 싫어한다더라'보다는 '일부 동문들은 꼭 동문이라고 해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것은 아니더라'로 해석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 사실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총동문회가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펼쳐질 내용이 흥미진진해진다.

이에 서강대학교 총동문회는 일부 동문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동문여러분의 분별있고 성숙한 태도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제 그 입장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총동문회가 일부 동문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하거나 분별있는 태도를 촉구할 수는 있다. 가령 일부 동문들이 대학의 이름을 사칭해서 사기를 쳤다든지, 어떤 행동을 전체 동문의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한다면 그 역시 우려와 촉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저 둘에 다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왜?

그동안 총동문회는 서강 또는 서강 동문의 이름으로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하지 않는 객관적 자세를 유지해 왔고 정치적인 단체가 아니므로, 서강 또는 서강 동문의 이름을 표시하여 정치적 견해 또는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총동문회가 이렇게 하는 것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바람직한 일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 이유는, 총동문회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든 동문이 그렇다고 세상이 이해할 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들이 그렇게 않는다고 다른 동문들도 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입장이다. 게다가 여기서 정치적인 단체가 아니면 정치적 견해를 발표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파시즘적인 주장이기까지 하다.

또한 서강 동문들 중에는 동문인 특정후보를 반대하는 동문도 있을 수 있지만 지지하는 동문도 있으므로 어느 쪽이든 서강 또는 서강 동문을 대표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하여 그 찬반 의견을 표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하는 동문도 있지만 지지하는 동문이 있으니 오해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하여 찬반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선 하나, 오해할 수 있는 명칭이 아니다. 둘, 게다가 전체 동문을 사칭했다고 보이는 '서강바른포럼'이라는 단체는 2010년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해서 신문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박근혜(70전자:한나라당), 서병수(71경제:한나라당), 김호연(74무역:한나라당), 권택기(84경영: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정치 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우리의 동문들이 계십니다. 이 네 동문님과 함께 12월 8일(수) 18시 30분에 거구장 신관2층 컨벤션 홀에서 서강바른포럼 송년모임을 갖게 되었음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

"서강바른포럼은 박근혜 동문 등 국가지도자격인 동문들을 돕자는 마음이 모이는 따뜻하고 바른 모임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이 송년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하였고, '박근혜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아울러 동문 대 동문의 자격으로 서강 동문 또는 서강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특정 후보를 반대하는 자리에서 '동문'이라고 호칭하면서 특정 후보의 명예를 훼손하고 마치 서강 동문 사회 전체가 특정 후보를 반대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대강의 의도가 다 드러났는데, 왜냐면 '서강바른포럼'의 활동에 대해 총동문회가 어떠한 우려나 촉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동문에 대해 지지는 괜챃고 비판은 안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총동문회가 다른 단체들은 다 괜찮아도 저 1631명의 온라인 서명은 안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정치적 호불호를 표현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권리다. 뿐만 아니라, 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문들이 공동으로 어떤 입장이나 행동을 취하는 것은 참으로 합헌적일 뿐더러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 총동창회는 지금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기본권을 동문의 이름으로 제한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그런 것은 '법률로써 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나의 생각만이 옳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는 시각으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서강 공동체의 갈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는 위험천만한 태도입니다.

총동문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저 1631명은 결코 나의 생각만이 옳고 남의 생각만이 틀리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남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 뒷 부분은 박정희나 전두환의 담화에서 들을만한 전체주의적인 논리 비약이라서 몸이 부르르 떨릴 뿐이다.

서강은 다양성을 가르치되 배타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강은 공정함을 가르치되 편향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강은 사랑을 가르치되 증오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강은 화해와 일치를 가르치되 분열과 갈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총동문회가 하고 있는 일이 배타성과 편향성과 증오와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다. 총동문회의 생각과는 달리, 지지하는 동문들이 지지를, 반대하는 동문들이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다양함과 공정성과 사랑과 화해의 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저 '일치'라는 말이다. 이것은 끔찍한 말이다. 흔히 요즘에 쓰는 통합과는 천지차이가 있는데, 아마도 '국민일치위원회' 같은 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일치'라는 말은 다양성부터 화해까지의 모든 말을 일거에 와해시키는 모순적인 표현인데, 아마도 총동문회는 총동문들을 '일치'시키고 싶은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헌신의 정신과 책임감, 성숙하고 원만한 인격으로 사회와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적 시민으로서 세계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고 민족 번영 및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참된 세계인의 자질을 갖춘 서강 동문 여러분의 이성 회복을 촉구하며 뜻깊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문 여러분께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 12. 17.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서강대학교의 묘표는 '진리에 순종하라' 이다. 예수회 학교인 서강대학이 이 모표를 갖게 된 것은 모르긴 몰라도, 인간의 진리가 언제나 신의 진리 앞에서는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인 것이므로 학문하는 과정에서 늘 겸손하라는 경고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표를 좋아한다. 이것은 일체의 권위주의,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어떠한 개인이나 공동체도 그것이 인간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한,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깊은 통찰이 여기에는 담겨있다.

저 모표 앞에, 오늘 총동문회의 입장은 참으로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참으로 부끄러운 날이다. 나는 감히 총동문회가 이성을 회복하기를 촉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부끄럽다.
#서강대 #서강대 총동문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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