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풍수>의 고려 우왕.
SBS
'불쌍한 임금' 하면 흔히 조선 단종을 떠올린다. 하지만, 단종 못지않게, 어쩌면 단종보다 훨씬 더 불쌍한 왕이 있었다. SBS드라마 <대풍수>에 등장하는 고려 제32대 우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단종은 열일곱 살에 죽었지만, 우왕은 성인이 된 뒤인 스물다섯 살에 죽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단종이 훨씬 더 불쌍한 임금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죽은 이후를 놓고 보면, 우왕이 훨씬 더 불쌍했다. 왜냐하면, 우왕은 단종보다 훨씬 더 비참하게 격하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중국 역사서에서는 각 군주의 역사를 '○○황제 본기(本紀)'로 묶었다. 사대주의자인 김부식도 <삼국사기>에서 고구려·백제·신라 군주의 역사를 이런 본기의 형식으로 묶었다.
그에 비해 조선 건국세력이 편찬한 <고려사>에서는 고려 군주들의 역사를 각각의 세가(世家)로 묶었다. 예컨대, 제31대 공민왕의 역사는 '공민왕 세가'로 묶었다. '세가'는 제후에게나 적합한 표현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제후들의 이야기를 '세가'로 엮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조선 건국 세력은 고려를 제후국으로 폄하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나마 '세가'로도 묶이지 못한 두 왕이 있다. 우왕과 우왕의 아들인 창왕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시대의 역사는 <고려사> 열전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역사는 '신우 열전'과 '신창 열전'으로 묶였다. 이것은 이들이 '왕이 아닌 사람'들과 동격으로 취급되었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우왕과 창왕은 칭호마저 격하되었다. 고려왕들에게는 묘호나 시호가 부여됐다. 태조·혜종 같은 묘호(사당의 칭호)나 충렬왕·충정왕 같은 시호가 부여된 것이다. 그에 비해, 우왕 부자는 묘호도 시호도 아닌 실명으로 불리고 있다. 이름인 '우'와 '창'을 따서 우왕·창왕이라 불린 것이다.
그뿐 아니다. 우왕과 창왕은 역대 고려왕들과 성씨마저 다르다. 고려왕들의 성씨는 당연히 왕씨다. 하지만 이들은 '맵다'를 의미하는 신(辛)씨 성을 갖고 있다. 우왕의 아버지요 창왕의 할아버지인 공민왕은 왕씨인데 이들은 신씨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승려인 신돈이 이들의 조상으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우왕이 단종보다 더 불쌍하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또 왕위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혈통과 성씨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표현하면, 우왕은 성(姓)폭력까지 당한 임금이다.
혈통과 성씨마저 빼앗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