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의 <그늘 : 문학과 숨은 신>김응교는 <그늘>에서 상처가 있는 존재들에 관한 시와 소설의 분석을 통해 "너의 증상을 사랑하라"라는 실로 놀라운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새물결플러스
우리는 자칫 그늘을 어둠과 동일시하기 쉽다. 왜 아니겠는가. <표준국어대사전>조차 '그늘'을 "어두운 부분"으로 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늘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를 일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낮의 햇빛 아래든, 희미한 불빛이든 간에 무언가 빛이 있어야만 그늘은 생성된다. 그렇다면 그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지향성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이 어둠을 지향하든, 빛을 지향하든 간에.
나는 김응교의 문학에세이 <그늘 : 문학과 숨은 신>(새물결플러스 펴냄)을 읽으며 투박한 대로 위의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그런데 저자도 아마 이러한 바를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그는 '그늘'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밝혀두고 있다. "빛의 세계도 어둠의 세계도 아닌 그늘, 깊숙한 숲을 뚫고 어둠을 분해하는 그늘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6쪽.) 그렇다면 '그늘'이라는 비평적 용어로 종합할 수 있는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저자가 지향했던 바는 무엇일가?
위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김응교가 <그늘>에 수록한 스물일곱 편의 글을 집필하는 동안 탐구했던 이론적 전제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이십여 년의 세월에 걸쳐 쓴 글들의 모음이라 그 이론적 편린들이 일관된 것은 아니나,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을 두고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루시앙 골드만의 저작 <숨은 신>이고, 다른 하나는 자크 라깡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이다.
'숨은 신'이라는 이름의 신과 소통하다그런데 이 책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은 이 두 가지 이론 모두가 '전제'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 골드만의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문학과 그 주변을 탐사하는 가운데 라깡의 이론을 전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늘> 전체를 관류하는 골드만의 문학 이론은 바로 아래의 내용으로 대변할 수 있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진실한 당신은 숨은 신'인 것이다. 이 숨은 신은 현존하며 동시에 부재하는 신이지, 때때로 현존하고 때때로 부재하는 신이 아니다. 숨은 신은 '언제나 현존하며 언제나 부재하는' 신이다. (루시앙 골드만, <숨은 신>, 송기형 외 옮김, 연구사, 1986, 48~49쪽.)
혹자는 이와 같이 그가 '숨은 신'으로 표상되는 문학이론에 기대고 있는 점, 또 그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들이 부분적으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점 등의 이유 때문에 <그늘>이 종교문학에 관한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기독교와 문학'에 관한 책이되, 종교에 관한 혹은 종교문학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우리가 윤동주의 시구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십자가> 중에서)을 종교시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논조는 우리가 '종교문학'에 대개 갖고 있던 편협한 시각에서 멀찌감치 달아난다. 그는 작가들이 자기의 결핍을 어떻게 응시했는지를 살피는 한편, 아픔과 상처를 직시하는 동안 작가 스스로 인지했든지 인지하지 못했든지간에 신과 소통하고 있음을 살핀다. 그는 바로 '숨은 신'이라는 이름의 신과 소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늘>은 종교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상처가 있는 존재들에 관한 작품들을 분석한 책이다.
'그늘', 혹은 전환이라는 이름의 비평적 성취
김응교는 상처가 있는 존재들에 관한 시와 소설의 분석을 통해 "너의 증상을 사랑하라"라는 실로 놀라운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이 평범해 보이는 문장을 놀랍다고 말해두어야 하는 까닭은 그의 주장이 정신분석학자인 라깡이 '쌩톰므(sainthome)'라는 명명을 통해 주장했던 "당신의 증상을 즐겨라"를 전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비평적 성취의 측면에서 감히 '전환'이라는 이름을 남겨두고 싶다.
저자가 이 '전환'이라는 비평적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는 늘 '사이'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 광장과 상아탑의 사이, 엄숙함과 비루함의 사이 등이 바로 그가 살아온 자리이다. 그가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노숙자들을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자리들이 '그늘'은 아니었을까.
그늘 - 문학과 숨은 신,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김응교 지음,
새물결플러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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