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리 이삭 내부베이커리 이삭 내부.송씨의 첫째 아들이 만든 '인권이네'가 걸려있다.
신나리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앞.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제과 프랜차이점이 눈에 띈다. 합정은 개성 있는 술집이나 카페로 유명했다. 비교적 프랜차이즈가 적었던 이 길에도 어느새 '합정점'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생겼다. 합정역에서 상수역방향의 길에는 프랜차이즈 국수, 안경가게, 김밥 집과 아직 살아남은(?) 가게들이 번갈아 가며있다. 상수역을 향해 600m를 걸어가면 '베이커리 이삭'이 보인다.
이삭은 2006년에 처음 이곳에 문을 열었다. 주인 송용복(42)씨는 열네 살 때부터 빵을 만들었다.
"제가 경남 통영, 통영에서도 배타고 들어가야 하는 두미도 출신이에요. 당시에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서울에서 빵집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고 하더라고. 서울 애들은 못 믿겠다고 고향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면서…." 9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가정형편도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한 시 반까지 일은 계속됐다. 쉬는 날은 따로 없었다. 3만 원이라는 월급이 많은지 적은지도 몰랐다. 꼬박 15년을 서울 신길동의 한 빵집에서 일했다. 소년은 청년이 됐다. IMF가 터졌다. 주인은 장사가 안 된다며 직원 월급을 부담스러워했다. 스물아홉, 송씨의 월급은 90만 원이었다. 제빵 경력 3년차인 친구는 월 15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신길동에서 가까운 신대방의 빵집에 새 일자리를 구했다.
"앞뒤로 프랜차이즈를 두고 동네 빵집으로 버티려면..." "그때 처음 보너스라는 걸 받았어요. 쉬는 날도 있었고, 일하는 시간만큼 월급도 올랐고요. 공장장이 돼서 열심히 일했죠." 원래 제빵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시다바리, 뭐 인턴같은 거죠. 청소하고 짐 나르고 다시 청소하고. 한 10여년 그렇게 청소와 빵 만드는 일을 배우면 공장장이 돼요." 송씨가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난무하기 전에 동네 빵집이 생기는 과정은 어디나 엇비슷했다. 공장장이 되어 또 10년, 20년 경험을 쌓고 돈을 모아 자기의 빵집을 여는 것.
"지금에야 뭐. 50-60대 들이 퇴직하면 퇴직금 받은 걸로 빵집을 열잖아요. 본사에서 반은 완성된 빵(반제품)을 갖다 주니까 편하거든요. 빵을 만든다기 보다는 전달받아 파는 거죠."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후 송씨는 상수동 지금 자리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몇 년 전, 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찾아와 '본사지시로 이 근처에 빵집을 열 예정인데, 사장님이 직접 하시면 어떠냐'고 권유 같은 협박을 했을 때 거절한 것은 자신의 가게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가게를 지키려면 그만의 경쟁력이 필요했다. 송씨는 다양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10여평 되는 '베이커리 이삭'에는 총 90여 가지의 빵이 있다. 손님들은 소보로, 팥빵과 같은 어느 빵집에서나 볼 수 있는 빵에 '국진이빵' '소라 파이'처럼 '이삭'에서만 파는 빵을 더해 샀다.
"앞뒤로 프랜차이즈를 두고 동네 빵집으로 버티려면… 메뉴개발을 많이 하는 편이죠. 뭐가 맛있을까, 어떤 빵을 만들어 볼까. 다양하게 만들어서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요. 잘 팔린다 생각하면 양을 늘리고, 인기가 없다 싶으면 바로 메뉴에서 없애요." 하루 24시간중 20시간...불이 꺼지지 않는 베이커리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