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두 이주노동자가 산재와 임금체불로 상담하고 있는 모습
고기복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이름이 알○이었다. 알○씨는 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넣었고, 수술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의료용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사측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아서 소송을 통해 산재승인과 체류자격 변경을 하고자 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산재 피해자는 체류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소송에 관계없이 'G1' 비자로 체류자격을 변경하여 합법적으로 체류가 가능하다. G1 비자는 '치료, 임금체불' 등 인도적인 사유가 발생해 3개월 이상 체류가 불가피할 경우 발급해주는 비자다. 문제는 산재신청을 거부하는 대부분 사업장의 핑계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 당연 가입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소송을 통해 산재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변호사 사무실에 왜 소송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회사 측에서 산재를 신청해주지 않아서 체류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미등록'이 되었는데, 보상도 받고 철심제거 수술도 하려면 체류 자격을 다시 얻을 필요가 있어서라고 했다.
변호사 사무소는 알○씨의 소송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재나 이주노동자 체류 관련한 비자 규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알○씨가 여러 단체를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산재승인도 못 받고, 체류자격도 못 얻은 이유는 상담을 하고 법률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상의 한계가 있었고,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이 없다 보니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소송까지 끌고 간 것으로 보였다.
산재 신청 기피 회사에 대응하는 방법
산업재해보상법에 의하면 모든 사업장은 산재보험을 의무 가입해야 하고, 각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의 채용형태나 체류자격 등에 관계없이 산재를 신청해야 한다. 이 말은 일반보험처럼 사업주가 임의 가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보험관계는 노동자가 일하는 순간부터 적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업주들이 산재 가입을 안 했다는 이유를 들어 산재 신청을 기피한다. 대개 사업주가 병원비를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산재 치료 후에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산재처리를 강하게 요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에서 산재 신청을 기피해도 이 문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이러한 절차를 공상처리라고 하는데, 이럴 경우 나중에 치료가 더 필요하거나 후유증이 남을 경우 그 부담은 산재피해자에게 그대로 전가되기 때문에 공상처리는 산재피해자의 피해를 가중시킬 여지가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기피할 경우, 피해 당사자는 사업주 서명 날인 없이, 사유서를 써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사업주에게는 산재 발생 보고를 하지 않고 은폐할 경우 과태료 10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알○씨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사무소에서 이런 규정을 모르다보니까, 소송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 산재 승인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산재는 사업주나 노동자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 발전에도 장애가 되기 때문에 재해예방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산재 예방 노력을 유인하기 위해 산재 발생률을 공사입찰 혹은 낙찰 적격 심사 신인도 평가의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한다. 이 말은 산재 발생이 많은 업체에 대해 각종 불이익을 주는 한편, 산재가 적은 업체에는 각종 불이익을 면해 주거나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각 사업장은 신인도 평가에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산재 발생 신고 의무를 어기다가 적발되더라도 벌금은 은폐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치기 때문에, 산재 은폐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재 은폐 적발에 대한 과태료가 실효성이 있어야 하고, 산재 피해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월급도 못 받았는데, 과태료 내라는 출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