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도마> 표지
실천문학사
일명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능력과 포스가 있다. 그러나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고수란 뭔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히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오래 버티고 단련된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라면 '고수'라는 말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말이 더 걸맞은 표현 아닐까.
여기 '생활의 달인'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시인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요리사'라는 이름을 달고 식자재를 씻고, 자르고, 다듬으면서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도시 노동자로서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 김광선. 그의 나이 올해 53세다.
거칠고 매서워 보이는 인상 덕분에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 그를 보고는 '주먹 쓰는 세계'에 있는 형님(?)을 떠올리곤 한단다. 덕분에 그는 술집에서 만취한 취객을 눈빛 하나로 제압하는 일이 많았다고.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상은 인상일 뿐 지인들이 알고 있는 시인은 상처를 주기보다 상처를 받는 것에 익숙하고, 화를 내기보다 안으로 삼키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김광선 시인은 지난 12월 21일 그의 생애 두 번째 시집 <붉은 도마>를 세상에 내놨다. 등단하기 전에 펴낸 시집 <겨울 삽화> 이후 12년만이다.
그는 칼을 다루며 요리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언어를 다루며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개의 직함은 서로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이면서도 무척 닮아 있다. 그가 무수한 삶의 노하우를 몸으로 익혀 왔듯 그 노하우와 상상력들을 시 쓰는 작업에도 부단히 대응시켜 왔을 것이다. 칼이 그의 막막한 생계를 지키는 도구였다면, 언어는 그의 고단한 영혼을 지키는 도구였을 터.
칼은 이중적이다. 칼이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유용한 도구이면서도 잘못 다루면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한다. 파에톤의 '태양 마차'처럼 욕망이란 언제나 어떻게 쓰이고 지휘 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진다. 이것이 그가 칼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이유다.
이십 년을 넘게 산 아내가빈 지갑을 펴 보이며나 만 원만 주면 안 되느냐고 한다 낡은 금고 얼른 열어파란 지폐 한 장 선뜻 내주고 일일 장부에꽃값 만 원이라고 적었더니꽃은 무슨 꽃,아내의 귀밑에 감물이 든다. - 시 <만추> 전문 p.63
때때로 버리고 싶었을 업이지만 끝내 버릴 수 없는 업으로 칼을 쥐게 된 시인은 노동 밖 세상의 이야기에도 귀를 두고, 세월에 무뎌지는 정신의 칼날을 간다. 아마도 시인은 역사와 불합리, 또는 부조리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수없이 자책하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운동성이나 진정성, 순수성을 잃어가는 자신을 향한 성찰의 칼날은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칼날보다 훨씬 더욱 예리하게 번뜩였을 것이다. 언어와 삶을 다루는 자신의 칼날이 무디어진 것은 아닌지 수차례 자신을 진단하고 돌아보았으리라. 역설적이게도 시인의 칼은 예리하고 부드럽다. 이것이 김광선 시인이 지닌 '칼의 미학'이다.
봄이 오면 죽은 것처럼 보이는 마른 나무 등걸에서도 거짓말처럼 새순이 돋고 어여쁜 꽃이 피어난다. 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 앞에서도 그의 감수성은 커다란 동요를 일으킨다. 비록 겉으로 내비치는 그의 모습은 나무껍질 같은 둔탁하고 거친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딱딱한 가죽 안에서 나무는 새순과 꽃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의 내면은 한없이 여리고 부드럽다. 그는 나무를 볼 때마다 동질성을 느낀다. 닮은 꼴이다. 자신이 책임지고 돌봐야 할 새순 같고 꽃 같은 아내와 어린 것들을 위해 스스로 딱딱하고 못난 나무가 되려고 한다.
봄날, 수줍던 여린 홑겹만 어디 꽃이라던가너무도 말간 가을볕 아래서나무는 자글자글 숨을 곳이 없다구정물에서 쉽게 건져지지 않던 퉁퉁 불은 시간들지루해서 소주 한 잔에 발간 저녁놀그래도 아직 떨림은 있다내외할 것 없이 잡아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가장 편해서 홀대했던 꽃 같은손 - 시 <나무는 두 번 꽃피운다> 일부 p.15시인의 손은 '가장 편해서 홀대했던 꽃'이다. 한파에 멈췄던 나무의 성장이 봄기운에 생동하듯 시인의 가장 깊숙한 그곳에는 한없이 맑은 성수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나무와 새순, 나무와 꽃은 서로 참 많이 다르면서도 결국엔 한 몸인 것처럼 그는 끊임없이 현실의 부조화를 견디어 나간다.
수없이 길을 잃었다 자본의 늪 속에서자신이 없을 때마다 부끄럽지만 길을 접었다골목까지 점령한 대기업들의 무차별한 상술 앞에서몇 십 원의 이문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시작한아들 녀석 슈퍼마켓 냉장고에 술을 채우고 있는데낯선 서울 지역 전화번호가 뜬다행여 이 낡은 시인에게원고 청탁이라도 하려나 싶어받아본 전화가 모 신문사 간부란다옳거니 했는데조근조곤 낮은 목소리는 언론사가 어려워서 그런다고변하지 않는 세상에서힘 있는 자 편을 들지 않은 오랜 전통의 언론사그렇게 어려웠구나, 그 자리 가기까지가시밭길이었을 그의 자존심을 어떡하나어려운 형편에 보는 잡지가 있다고두 가지는 무리라고 했더니거기도 진보고 우리도 진보인데 구독 기간 끝나면우리 잡지도 한번 봐주십사그의 부탁이 간곡하다 아, 진보여가난하고 외면받고 딱해서더욱이 지켜야 할 자존심이 후두두 아카시아 꽃잎처럼 진다마음 어딘가 또 가시 하나가 돋는다.- 시 <아, 진보> 전문 p.30~31 멸치를 다듬으며 바라보는 벚꽃에게선 비린내가 나고, 배추 겉절이를 소금에 절이면서도 그것이 소금에 온전히 절여지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가난해서 더욱 지켜야 할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서글픈 비애를 맛본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신세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좌절을 가르치지만 그는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강자들의 논리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법을 익힌다. 소리는 없지만 분명한 저항이다. 그 저항의 현실적 한계와 생존의 중압감이 얼마나 자주 그를 괴롭혔을지… 붉게 물든 그의 도마는 수십 년 노동자의 인생을 읽게 해준다. 가슴 한켠이 자꾸만 시려온다. 입안에 뜨거운 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을 때보다도 우리네 인생은 참, 쓰다!
붉은 도마
김광선 지음,
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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