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만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은 아닐까?
생텍쥐페리
그런데 이 모자 그림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수하지 못한 어른으로 낙인찍힌다. 그런데 확언하건데, 이 그림을 처음부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인식하는 어린아이는 세상에 한 명도 없다. 따라서 그 취지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주고 싶어도 어딘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단지 동화적 상징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어린 왕자의 가면>은 저자 김상태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쓰여진 가면을 벗기고 그 맨 얼굴을 드러내는 일찍이 보지 못한 시도를 하고 있다. '뭐 동화의 설정이니 그럴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그 순수하디 순수한 어린 왕자에게 흠집을 내려 하는 시도에 조건반사적으로 반감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선은 차분하게 가면 속을 들여다보고 나서 판단하는 것도 늦지는 않으리라.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텍쥐베리의 삶을 통해 <어린 왕자>에 담겨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부분이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에 백작 신분인 귀족 아버지와 역시 귀족 가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904년에 아버지가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하는데 가장을 잃자 혼자서 생활을 꾸리기 힘들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생트로페 근처에 있는 샤를 드 콩스콜롱브의 라몰성으로 이사를 갔다. 샤를 드 콩스콜롱브는 생텍쥐페리의 외할아버지다. 1907년에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이번에는 생텍쥐페리의 종조모인 트리코 백작부인의 성으로 이사를 간다. 열네 살 소년이 될 때까지 생텍쥐페리는 이렇듯 커다란 귀족의 성채에서 성장한다.
친지들의 보살핌 속에 자란 생텍쥐페리는 자유분방을 넘어 버릇없이 자랐다. 생텍쥐페리는 예수회 소속의 규율이 엄격한 학교에 입학했는데 제멋대로 자란 탓에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전학을 다니다 스위스 프리부르의 빌라 생 장에 등록한다. 이곳은 할증료를 내면 독방을 내주는 곳이었다. 생텍쥐페리는 이 사실을 알고 가난한 어머니를 졸라 끝내 독방을 썼다. 바로 이 방에서 그는 문학에 눈뜨게 된다. 혼자 독방에서 공상을 탐닉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독서 능력은 늘어갔지만, 더불어 고독과 더욱 친해진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군에 입대해서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부대 근처에 방을 얻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군 생활 중이니 밤에는 병영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자유시간만이라도 혼자 책을 읽고 공상에 빠질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며 어머니를 졸랐다. 수입이 변변치 못해 돈을 빌려 아들을 위해 헌신을 다했던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이 결국 아들을 고독에 빠뜨린 것이다. 사실 가난한 어머니에게는 이 아파트의 임대료가 아주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술 더 떠 엄청난 돈을 요구한다. 당시 스트라스부르 비행장은 민간 항공사와 공용으로 사용했는데, 동부항공사라는 회사가 관광비행을 영업하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비행기 조종을 연습하고자 어머니에게 큰돈을 부탁했던 것이다. 생텍쥐페리에게 지극정성인 어머니도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만다.
성을 떠나 세상으로 나왔지만 생텍쥐페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세상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만의 고립된 독방이나 아파트와 그 바깥의 세상이다. 이것은 고립된 어린 왕자의 소혹성과 그 밖의 다른 이상한 소혹성 및 불모의 땅 지구 사이의 분열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다. 고립된 독방과 소혹성에서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는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 왕자다. 반대로 바깥세상인 다른 소혹성과 지구는 그들이 이해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공간이다. 자신의 방과 소혹성에서 왕자인 생텍쥐페리는 바깥세상에서는 그저 왕자병 환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