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잘하셨어요, 고마워요"

주말이 힘든 길고양이들

등록 2013.01.28 09:56수정 2013.01.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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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9일 오전 10시 30분]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씨가 많다. 그래도 이전 겨울은 삼한사온이라 하여 사나흘 추우면 다음 사나흘은 한결 따듯했건만 이즈음은 그런 주기도 깨트려버리고 있다. 게다가 길바닥 곳곳에는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버려 빙판이 되었기에 가능한 한 나들이를 자제한 채 집 안에서 웅크리며 지냈다.

한의사나 양의사 모두 건강에는 걷는 게 가장 좋다고 하여 직장에서 명퇴한 이후 강원도로 내려와 하루에 한 차례씩 산책하는 즐거움에 살았다. 이전에 강원도 횡성 안흥산골에 살 때는 서너 곳의 산책로를 정하여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 송한리 고갯길이나, 주천강 강둑, 아니면 동네 오솔길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그야말로 발길 가는대로 한 바퀴 휘돌아오곤 하였다.

6년 남짓 그런 즐거움을 누리다가 여러 사정으로 원주로 이사 온 뒤 평생 처음으로 아파트생활을 하고 있다. 연탄 가는 일도, 마당을 쓰는 일도, 눈이 와도 눈을 치우는 일도 하지 않는 아파트생활은 사람을 더욱 게으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사 후 처음에는 매일 헬스장에 나가기도 하였지만 평소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익지 않은 사람이라 곧 접고 대신 거의 매일 산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새로 개발한 몇 산책로는 가까운 매봉산 일대를 한 바퀴 돌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치악산 구룡사를 찾거나 그 반대편인 금대계곡, 또는 신림 방면의 치악산 동쪽 상원사 계곡을 찾았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부터 새로 개발한 곳은 매지리 연세대 캠퍼스다.

산책길에서 만난 길고양이


a  연세대 원주매지리캠퍼스의 길고양이들

연세대 원주매지리캠퍼스의 길고양이들 ⓒ 박도


그곳은 내 집에서 시내버스를 한 번 타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캠퍼스 경치도 좋고 언저리 풍경도 무척 좋다. 그곳에 이른 뒤 커피 점에서 원두커피를 한 잔 사들고 야외극장 잔디 스탠드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면서 호수를 바라보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욱이 캠퍼스 곳곳에는 젊은 물결들이 넘쳐흐르지 않는가. 그 젊음들을 훔쳐보면서 나도 한때 저런 날이 있었다고 자위하면서 돌아오면 마치 그들에게 새로운 양기를 받은 것처럼 그날 산책은 내 생활에 활력소 역할을 한다.


지난 주 늦은 산책을 나서며 매지리행 시내버스를 탔다. 눈발도 흩날리기에 학생복지회관 커피 점에서 커피를 산 뒤 그 커피를 마시면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종점인 캠퍼스에 내리고 보니 학생복지회관 문이 닫혔다. 커피점도, 제과점도 모두 문이 닫힌 채 불도 꺼져 있었다. 그제야 그날이 일요일인 줄 알았다. 

막 돌아서려는데 길고양이 네 마리가 내 앞길에서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보면 길고양이들은 학생들이 던져준 먹이 덕분에, 배고파 울부짖는 일이 없었는데, 방학인데다가 일요일이요, 게다가 날씨마저 예사롭지 않자 그 일대에 지나는 이가 없는 모양으로 그때까지 온종일 배를 쫄쫄 주린 모양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내가 한동안 기른 고양이 '카사'가 눈에 밟혔다.

"아빠, 쟤네들 배가 고파 저렇게 울부짖으니까 저를 생각하듯이 요기를 시켜 주세요."

그런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마침 학생복지회관에 한 모서리 편의점은 문이 열려 있었다.

소시지 한 팩을 사서 그들에게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뒤 생각하니까 하루 온종일 굶은 네 마리에게는 너무 적은 양이라 돈을 아낀 내가 구두쇠 같아 몹시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 그들에게 먹이를 더 줄 만큼 후덕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시 만난 그들

오늘 오후 산책을 나서며 미리 행선지를 정한 곳은 구룡사 계곡이었다. 산책 후 어귀 찻집 화목 난로 곁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겠다고 아내에게도 이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서 구룡사행 버스를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전광판에도 언제쯤 도착한다는 문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30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다시 길을  건넌 뒤 버스정류장에서 신림행이나 매지리행 가운데 먼저 오는 버스를 탄다고 작정을 하고 기다리는데 매지리행이 다가와 얼른 올랐다.

시내버스가 캠퍼스 안을 지나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늘도 일요일이었다. 그제야 길고양이 생각이 나 학생회관으로 가자 그놈들이 먼저 알아보고 내 앞길에 어른거리며 배고프다고 응석을 부렸다.

"그래, 알았다."

나는 지난주처럼 편의점에 가 소시지 두 팩을 산 뒤 그들에게 골고루 네 토막씩 나눠준 뒤 다음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참 기분이 좋았다.

"아빠, 정말 잘하셨어요. 고마워요."

카사란 놈이 저만치서 그렁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 같다.

a  내 집을 떠나기 전의 카사

내 집을 떠나기 전의 카사 ⓒ 박도


덧붙이는 글 우리집 카사 이야기;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길고양이 #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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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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