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돌 맞은 학생인권조례, 보호자가 필요하다

[주장] 학생인권조례 1주년... 교육 가치 바탕으로 개선돼야 한다

등록 2013.01.28 17:25수정 2013.01.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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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발효된 지 1년이 됐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발효 1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주최자를 서울시교육청으로 할지, 학생인권위원회로 할지로 지난 1개월 동안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관련기사).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11층 강당은 빌려주지만,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참가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다. 현재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경기도·광주광역시·서울 등 3개 지역에서 공포됐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내용은 체벌·따돌림·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6조), 임신·출산·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5조), 복장·두발 등 용모에 있어 개성을 실현할 권리(12조), 집회의 자유(17조),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 허용(13조), 특정 종교 강요 금지(16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 상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도록 정해놨다.

주민청원단계부터 각종 우여곡절을 겪어온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후에도 재의결되는 등 여러 고비가 있었다. 하지만 이주호 교육과학부장관이 딴죽걸기에 나서기도 했다. 2012년 3월 21일, 시·도 교육청이 공포한 학생인권조례와 별개로 학교장이 교칙을 제정·개정할 수 있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다. 이는 상위 법률(초중등교육법)에 의해 학생인권조례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각 지역 교육청이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와 두발·복장 제한, 체벌 등을 통한 규제를 담을 수 있는 학칙이 대립하게 됐다. 학교 현장에서는 혼란이 심해지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또한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마치 학생인권조례라는 아이를 낳아놓고 키울 사람이 없는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돌 맞은 학생인권조례, 제 역할 하고 있을까

지난 12월 보궐선거를 통해 교육청에 입성한 문용린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수업에 방해되는 부분, 교권에 피해를 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언론과 서울시교육청·서울시의회·보수 및 진보단체 등 이곳저곳에서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다시금 논란이 점화되면서 학교 민주화를 둘러싸고 인권 조례를 빌미로 학생과 교사가 적대시하게 됐고, 교장과 교사가 적대시하며 서로 탓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 폭력이 증가하자 그 책임을 학생인권조례가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일까지 발생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학교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학생 인권은 학생들이 자존감을 갖고 타인과 소통하며 공동체적 조율을 통해 자율과 책무를 지닌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출범 1년째를 맞는 학생인권조례가 과연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충분히 작동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입시 위주 경쟁교육에서 비롯된 교실붕괴와 학교폭력이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에서 비롯됐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가 하면,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취지로 왜곡돼 갈 길이 바쁜 학생인권조례의 발걸음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조례가 발효된 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학교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사람들이 되레 큰소리를 치고 있는 모양새다. 인권조례 반대론자들은 임신·출산 학생과 성적소수자 처우 문제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고, 일르 반대 근거로 내세웠다. 각종 보수단체들 또한 인권조례가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관계로 설정, 교육자의 권리를 방해한다며 조례를 반대했다. 그들이 말하는 교권이란 결국 체벌·소지품 검사·두발 제한·교복 수선·휴대전화 소지 문제 등 세세한 생활 규정 사항이다. 이런 문제들은 허용 한계를 세부적으로 조정하면 될 문제지 인권조례 자체에 대한 반대 혹은 찬성으로 여론이 부딪힐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체벌금지 등을 빌미로 학생인권을 교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교총 등 일부 단체에서는 문용린 교육감이 선거에서 승리한 사실을 내세우며 학생인권조례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실패의 상징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호도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대립이 생긴다. 결국 학교에 있는 관리자 및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각종 규제를 두고 서로 양보하기 힘든 명분 싸움에 돌입하게 되는 결과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인권조례에 찬성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의 수업시간 중 휴대전화 사용에 반대한다. 인권 근본주의자들은 이를 강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교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무너진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럴 때 공동체 내에서 서로 합의하고 윈-윈(win-win)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규칙을 정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게 학생인권조례가 나아갈 방향인 '민주시민 교육'이다. 현실 속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이렇게 작동되지 않는다. 반대하는 이들은 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면서 학생들의 일시적 저항을 문제 행동으로만 보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근본주의를 주장을 하는 이들은 무조건적 사수에만 중점을 둔다. 서로가 각자의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수도 진보도 다시 한 번 톺아봐야 할 때

이러한 시기에 서울 학생인권조례 발효 1주년을 맞는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하다. 학생인권자문위원으로서 서울시학생인권위원회에 참여해보니 답답한 점이 많았다. 학생인권조례는 처음 발효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재임기간에도 재의요청·대법원 제소 등으로 힘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새로운 교육감이 들어서니 담당자들은 더욱 찬반 양측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교육감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당선 후 전교조에게 사과 발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정치적 행보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추대한 진영의 논리만 내세울 게 아니라, 교육적 가치를 바탕으로 전임 교육감의 정책 중 승계할 것은 승계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는 완만한 운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편, 진보진영에서도 학생인권만큼 중요한 공동체의 소통과 건강성 유지를 담론에 포함시키는 변화가 필요하다. 공동체 생활협약을 채택한 서울 국사봉중학교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진보진영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서울교육청은 혁신학교 신설을 둘러싸고 의회 대 집행부, 더 나아가 보수 대 진보진영의 명분싸움을 벌인 바 있다. 어차피 양쪽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여소야대 시의회 구성 안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독단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과 의회는 교육적 가치 속에서 상호 신뢰와 타협의 정신을 가지고 관계를 재정립해 민주시민 육성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2014년 학생인권조례 발효 2주년에는 이번처럼 '보호자 없는 미아'를 둘러싼 기념식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고 응원할 수 있는 기념식이 되면 좋겠다.
#학생인권 #문용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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