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용산> 겉표지
서해문집
강제진압은 다음날(20일) 새벽으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 철거민들이 농성 중이던 건물은 커다란 불길에 휩싸이고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다. 용산참사 그 대략이다.
1984년부터 용산에서 금은방을 하던 김재호씨도 다른 철거민들과 함께 농성했다. 말도 안 되는 평가 금액으로 내쫓길 판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났다.
2009년 2월 9일, 검찰은 철거민 7명을 구속기소하고 1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짜맞추기 수사발표를 한다. 죽은 사람들을 살인범으로 몰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씌우는 수사 발표였다.
김재호씨도 살아남은 또 다른 사람들과 '도심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구속 기소된다. 그리고 징역 4년을 구형받는다. 그리하여 서울구치소와 공주교도소에서 3년 9개월을 복역한 후 만기출소 3개월을 앞둔 지난해(2012년) 10월 26일, 다른 한 명과 출소했다.
김재호씨, 살아남은 또 다른 사람들과 '도심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구속 그가 수감되던 당시 그에게는 아내와 9살짜리 딸이 있었다. 하루종일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아빠를 유독 표나게 따랐던 그런 딸이었다. 그가 늦둥이로 본 어린 딸은 아빠의 구속과 그로인한 부재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범죄자가 되어 수감된 그 역시 충격이 컸다고 한다. 가장으로서 밖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 또한 클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딸에 대한 걱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그는 딸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고 그에 사연을 적는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염려, 아빠로서의 당부 등을 담은. 그리고 1주일에 2~3편씩 딸과 아내에게 보내게 된다.
가정을 파괴하는 범죄자 가운데는 여러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은 아동유괴와 성범죄자일 것이고, 살인자도 거기 속할 것입니다.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사기범도 있는가 하면, 힘들게 키워주신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폐륜아도 있습니다. 직접 몸에 해를 가해야만 폭력은 아닙니다. 무죄인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면 이 또한 범죄입니다. 많이 배웠다는 무기로 높은 자리 꿰차고 앉아 한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들이야말로 더 흉악한 가정파괴범이 아닐까요? 그들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용산철거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에 탄 철거민에게 살인자라는 죄명을,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뛰어내린 이에게도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이 더러운 세상. 모두가 다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들만 그렇다고 합니까? 이들 모두가 가정 파괴범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꽃피는 용산>에서(기자 주:만화 내용 중 저자의 독백을 정리)<꽃피는 용산>(서해문집 펴냄)은 김재호씨가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400여 통의 만화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출간 소식이 반가웠던 책인지라 읽던 중 지인에게 이 책의 존재를 알려줬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딱딱한 시사만화?"라며 반문, 지레짐작으로 단정하고 만다. 아쉽게도 말이다. 아마도 '용산 참사'란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담은 책으로 한순간 오해했나 보다. 그런데 이 책은 시사만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훨씬 많은, 그래서 읽는 동안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런 만화다.
"용산참사 만화, 딱딱한 시사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