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15명의 독자들과 함께 읽은 <이야기 테라피>

등록 2013.01.31 14:00수정 2013.01.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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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테라피> 표지
<이야기 테라피> 표지이야기나무
요즘 '이야기'라는 주제에 꽂혀 있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으면 자연스레 친구들의 이야기가 반짝 반짝 빛난다. 이야기의 종류도 깊이도 다양하다.

일상적인 경험담이나 경험에 관한 생각, 황당한 이야기, 정치 이슈나 어떤 주제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 아이나 배우자, 지인에 관한 이야기 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 중에서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골라서 그 말을 한 사람의 다른 이야기도 쭉 훑어볼 때가 종종 있다. 그야말로 이야기 속을 여행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거기서 나의 끊어졌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이야기 자체는 '치료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가지고 심리치료의 도구로 삼는 재미 있는 상담사를 알게 되었다. <이야기 테라피>(이야기나무)의 저자 이시스 작가다. 작가는 강원도에 있는 햇빛섬 자연치유 명상센터에서 10년 넘게 최면분석기법을 이용한 심층심리치유, 명상치유와 그룹치유를 진행하고 있다. 유난히 한파가 잦은 올 겨울에는 수도가 얼어서 몇 번이나 고생했다는 이야기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았다.

<이야기 테라피>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야기와 사람에 대한 작가의 몰입이었다.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때 자아가 사라지는 것 같다는데, 나는 상담을 할 때 온전히 자아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은 내 자신이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했고 상담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내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책, 10쪽)

자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온전히 다른 영혼이 들어왔다가 다시 자아가 들어오는 과정은 자아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장자가 나비가 되어 본 것처럼, 작가는 온전히 이야기가 되어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건져낸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의 거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왕비는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을 해왔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22쪽)
토끼의 자만 때문에 거북이가 이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토끼가 진 이유일 뿐이다. (52쪽)


사람에게 이야기는 비유하자면 자동차에게 엔진이자 기름과 같다. 이야기가 부족하면 허기진 것처럼 움직일 힘도 없어지고 살아갈 힘도 약해진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매달려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원한다. 한 사람의 삶은 본인에게는 삶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다. 사람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하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충전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 그릇'에 곡식(이야기)이 채워지면 스스로 일어서서 움직일 원동력이 생긴다. 김연아 선수가 라이벌 아사다 마오와 경기를 하기에 앞서 각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이기러 온 게 아닙니다"(70쪽)라고 대답한 것처럼 이야기의 공격을 이야기로 받아 쳐낼 수 있는 힘이 안에서부터 생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테라피'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 테라피]를 읽으며 '이야기'를 감싸는 '두 가지 에너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빈 마음으로 다가가는 어릿광대"(233쪽)처럼 자아를 비워놓고 이야기를 채워넣겠다는 '경청의 태도'다. 이 에너지가 있어야 이야기가 편안히 머물다가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에너지는 이야기에 대한 강력한 '신뢰'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신화는 신뢰와 배신이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는가를 보여주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265쪽) 즉,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사랑과 신뢰로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었고, 미노스 왕은 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까닭에 괴물 아이를 낳고 공주에게까지 배신을 당한다. 이야기가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힘으로 설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야기 테라피>가 많은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내게는 고마운 책이다.

작가가 '나'를 비웠더니, 독자가 '나'를 찾았다

책의 제목이 주는 기운 때문인지 독자들의 반응은 무척 기분 좋았다. 민혜영씨는 "정말 홀딱 반한 책"이라고 가장 크게 칭찬해주었다. 서혜영씨 역시 "작가 이시스님의 사람과 사물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극찬했다. 김영헌씨는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야기 테라피> 안에는 글로벌 아티스트 이장섭의 컬러테라피가 삽입돼 있는데 이에 대한 만족도도 무척 높았다. 안희정씨는  "색상이 다른 글라데이션이 맘을 편하게 해주는것 같아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란 것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모호함'이기 때문이다. 장재호씨는 "책을 딱 덮는 순간 조금 영적, 심령술적이었다는 느낌"과 함께 좀 몽롱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은애씨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는데 조금 억지스럽게 끼워맞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상담을 받는 사람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독자와 공감대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태호씨 역시 "왠지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것 같아서 책에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이야기 테라피>의 문체 중에서 약간 거슬리는 부분은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서술과 '확신에 찬 가르침'의 느낌이 몇몇 군데에서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독자들이 이 부분을 날카롭게 읽어냈다. 작가든 독자든 같은 인생을 살아가며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로 발견하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면 작가의 취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든 아쉬움이 들었다.

독자들과 <이야기 테라피>를 함께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많은 독자들이 이 책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헌씨는 책의 여섯 가지 주제, 즉 경쟁, 나의 존재의미, 집중과 몰입, 사랑, 성공, 행복에서 관찰되는 것이 바로 '나'라는 데 주목하며 "나에 집중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권기성씨 역시 "나의 내적 상처든, 외적 상처든 그 원인은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김은아씨는 역시 아이와의 관계 부분에 관심을 가졌는데 "아이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나"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존재감의 기본 체력이 있어야 이 책을 통해 감동과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고은애씨의 말 역시 나를 세운다는 의미에서 보면 일맥상통한다.

김은식씨만이 "대화란 내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아를 사라지게 하는 작가의 핵심 주장을 확인했다. 내가 읽은 것과 독자들이 읽은 포인트가 달라서 한편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작가가 스스로를 비우고 이야기에 몰입함으로써 그 빈 자리를 독자들이 채워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또한 영혼과 영혼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가진 매혹적인 힘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야기 테라피> 이시스 씀, 이야기나무 펴냄, 2012년 8월, 380쪽, 1만7000원
* 이 기사는 소셜북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테라피 - 성장과 치유를 위한 힐링 스토리 24

이시스 지음,
이야기나무, 2012


#이야기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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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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