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정현 담임목사 소개글. 사랑의교회 당회 조사위원회는 1월 31일 "오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증거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사랑의교회
서울 강남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교회 내부 조사보고서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개신교 내에서도 '논문표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문표절과 관련이 있는 '박사학위'는 한국교회에서 목사들 스펙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형교회는 물론이고, 중형교회만 되어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명함조차도 내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교회의 청빙 절차가 문제다
'청빙'이란, 말 그대로 '청하여 모셔온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본래 목회자의 청빙은 개교회(기독교에서 공동체가 되는 교파에 속해 있는 개별적 교회당을 이르는 말)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목사를 모셔오는 의미였다. 그러나 목사청빙은 개교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가 속해있는 노회에서 결정이 된다.
본래의 청빙절차는 노회에 속한 교회에 담임목사가 필요하면, 개교회가 노회에 요청하고, 노회의 임원 혹은 원로가 그 교회에 적합하다 판단되는 목사를 추천하여 소개하고, 교회가 노회의 지도를 따라 담임목사를 청빙하였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교계 정치의 힘이 작용하면서, 힘있는 목사들이 자기 식구를 심기 시작했다.
나름 그런 힘을 가진 목사들에게 청빙을 원하는 목사들이 줄을 서고, 그런 가운데 개교회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이 청빙되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중대형교회에 많은 후배 목사들을 심어놓은(?) 목사는 교계에서도 그 힘을 이용하여 교계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생기자, 점차로 개교회중심으로 '청빙위원회'가 꾸려지고, 개교회에서 청빙을 하면, 노회에서 허락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개교회는 청빙절차를 공고하고 후보자들의 지원을 받는다.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보고 몇몇 후보자를 정하고, 설교를 들어보고 교인들의 총회인 공동의회를 통해서 담임목사 청빙을 결정한다, 그 이후, 노회의 허락은 거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전히 청빙절차에서 대형교회 목사 혹은 교계에서 나름 역할을 하는 명망있는 목사들의 힘이 작용하고, 지원서를 낸 후보자들은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교단마다 다르긴 하지만, 도시지역에서 자립구조를 갖춘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경우 최소한 30명 이상의 목사들이 지원한다. 세세한 문제들은 뒤로하고라도, 지원서에 포함된 이력사항에 '박사학위'는 가히 매력적이다. 교인들도, 기왕이면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빙'이라고 하지만, 거반 '채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교회의 욕심과 개인의 욕심이 합쳐진 결과 '박사학위'
현재 대부분 교단에서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목사안수를 받는 기준이 있다. 대체로 신학교 졸업 후, 최소 대학원(석사) 과정을 마쳐야 목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으며, 목사고시를 통과한 후에도 인턴과정 등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는다. 남자의 경우, 군입대기간을 제하더라도 최소한 대학 4년, 대학원 2년, 인턴과정 2년 등 8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신학교에 입학한 후,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렇게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바로 담임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도시에 있는 자립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으려면 부목사로서 스펙을 쌓아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이럴 때에는 될 수 있으면 교계의 명망있는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이거나 대형교회에서 부목사직을 감당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 '박사학위'라는 것이 더해지고, 명망있는 목사가 지원해주고, 대형교회에서 목회했었다는 경력이 덧붙여지면 거의 완벽한 스펙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목사를 원하고, 목사들은 그에 맞춰 스펙을 준비해온 것이다.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속된 말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과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목사에 대한 평가도 교회가 얼마나 외적으로 성장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교인수와 헌금액수에 따라 목사의 능력이 평가된다. 목회자 간의 사례비는 교회의 크기에 따라 비례한다.
작은 교회나 농어촌교회의 목회자가 한달 사례비로는 생활할 수 없어 '투잡'을 하는 예도 있지만, 대형교회 목사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례비를 받는 일도 있다. 결국, 이런 구조들이 얽히면서, 교회의 욕심과 개인의 욕심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서 박사학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가짜 박사학위가 판을 치고, 논문표절이 판을 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상보다 더한 어둠목사는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에 선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일을 감당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이 일을 함에서 '박사학위'가 있어서 문제될 것은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치장이 되고 수단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 그러나 학위를 위한 것이나 스펙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기도 했기에 학위를 위한 공부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솔직하게, 지금은 후회가 든다. 작금의 교회현실 속에서 박사학위가 있었더라면 훨씬 세상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을 터이니까.
그러나 목사는, 박사학위의 여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순결하며,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할 것이며, 세속적인 유혹에도 자신의 직을 정직하게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와 예수의 복음을 전한 이들 중에는 학식이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대를 읽어내는 눈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고 직언하는 이들이 존재했기에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따라가기에 바쁘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세상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예언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세상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그런 죽은 설교가 만연하는 까닭이다. 예언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까닭이다.
박사학위 논문표절, 그것이 교회 목사들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교회 안에도 만연하다는 사실, 교회도 박사학위가 없는 목사는 청빙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 판단의 기준이 신앙적이지 않고, 세상적이라는 데 이러한 비극들의 씨앗이 숨겨진 것은 아닐까? 여전히 의문이다. 왜 목사들에게 박사학위가 필요할까? 그리고 왜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 사회와 교회는 박사학위에 버금가는 삶의 경험이나 지혜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까, 너도나도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하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