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울 뜨거워지는 그곳... 오래된 친구를 떠올린다

[광주천 따라 걷기⑨] 금남로와 충장로

등록 2013.02.16 10:19수정 2013.02.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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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금남로 민주광장. 옛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엔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1980년 5월 민주성회를 열었던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은 이제 '민주광장'으로 새이름을 얻었다.
광주 금남로 민주광장. 옛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엔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1980년 5월 민주성회를 열었던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은 이제 '민주광장'으로 새이름을 얻었다.이주빈

그 길에 서면 유진오의 시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가 심장을 울린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는 것은
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이냐?

광주천 따라 걷기 3코스 구간. 서석교를 건너 천변 우로로 나오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게 하는 길이 있다. 금남로와 충장로다. 광주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두 길 모두 조선시대 충신의 호를 따 길 이름을 지었다. 지어진 이름이 길의 운명이 되었나. 금남로와 충장로는 언제나 역사에 충성을 다했고, 단 한 순간도 시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금남로는 노비 출신 무장이었던 정충신(鄭忠信)의 공신호인 금남공(錦南公)에서 이름을 따왔다. 옛 전남도청에서 금남로5가까지 약 2.3km 이어진 길에 증권회사들이 많이 있어 '광주의 증권가'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 금남로는 일제가 1920년대 무렵 메이지마치(明治町)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설한 길이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금남로의 시작 지점엔 조선총독부 전남도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전남경찰부와 광주경찰서, 일본군 수비대, 지방법원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식민통치 본영의 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광주사람들에게 금남로는 5·18이다. 금남로는 5·18의 시작이었고, 끝이었으며 다시 계속되는 오월이다.

1980년 5월 18일 오후 1시. 대검을 총에 꽂은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 등지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나 여자를 마구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는 만행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너나없이 경악했다. 광주사람들 특유의 기질이 발동했다. 상대는 특수부대인 공수부대원들이었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19일 오후 4시 50분. 시민들에게 포위된 계엄군의 장갑차에서 실탄이 난사됐다.


시민의 목소리를 오늘도 묵묵히 듣고 있는 금남로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인 옛 전남도청 공사용 칸막이가 그라피티 작품 전시관이 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인 옛 전남도청 공사용 칸막이가 그라피티 작품 전시관이 되고 있다. 이주빈

 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 구실을 하고 있는 '아시아문화마루'.
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 구실을 하고 있는 '아시아문화마루'.이주빈

밤비를 맞으며 날을 새운 시민들은 20일 오후 6시부터 대형 버스와 트럭을 앞세우고 금남로에 집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총 대신 태극기를 들고, 군가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그날 밤 11시경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감행했다.


21일 무장한 시민들이 광주 시내 곳곳에서 계엄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계엄군은 전남도청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정오 무렵부터 금남로에 있는 시민들을 한 명 한 명씩 조준 사살했다. 금남로는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무장한 시민들이 도청으로, 도청으로 몰려들었다. 기세 눌린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피로 되찾은 평온이 22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짧게 이어졌다. 사람들은 훗날 이날을 '해방광주, 대동광주'라 했다. 고립된 광주의 평온이었지만 단 한 건의 도둑질, 강도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두고두고 광주의 자긍이 되었다. 살육한 자들보다 우월했던 살육당한 자들의 도덕성. 그렇게 1980년대는 광주의 피로 체면치레 한 비겁의 시절이었다.

27일 새벽 2만5천 병력을 동원한 계엄군은 시민군이 잠들어 있던 도청을 공격했다. 시민군 17명이 사망했고, 295명이 체포되었다. 오전 5시 22분 도청은 계엄군에 의해 완전 장악됐다.

항쟁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국책사업의 하나다. 이 사업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시작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마다 5월 17일엔 금남로에서 '5·18전야제'가 열리고 있다.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이 무대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금남로에 찾아와 집회를 연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분노가 치미는 사연들을 금남로는 오늘도 묵묵히 함께 듣고 있다.

금남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충장로는 광주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거나 만남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지금도 특별한 약속 장소를 정하지 못한 이들은 충장로 한가운데 있는 광주우체국 앞에서 만난다. 시민들은 한때 이곳을 '우다방'이라 정겹게 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체국 다방'이란 뜻이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의자'를 건넬 시간

 광주 구 시청 사거리에 있는 어반 폴리 작품. 동양식 가옥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찾아 쉼을 연출했다고 한다.
광주 구 시청 사거리에 있는 어반 폴리 작품. 동양식 가옥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찾아 쉼을 연출했다고 한다. 이주빈

항쟁의 거리 금남로와 휴식의 거리 충장로가 병렬로 이어지고 있다. 일상이 노동과 휴식, 정치적 행위로 꾸려지듯. 이를 구분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필시 그들은 지배하는 세력일 것이다. 일상조차 분열시키지 않으면 그들은 이젠 다 커버린 '시민들'을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사로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사를 관심 없는 척 외면하고 살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일상은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으니까. 금남로와 충장로가 나란히 걷듯 말이다.

금남로와 충장로를 건너 옛 전남도청 왼편에 구 시청 사거리가 있다. 광주시청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20대와 30, 40대들이 즐겨 찾는 술집들이 많다. 금남로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분주한 반면 충장로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분주하다. 구 시청 사거리는 저녁부터 늦은 밤, 새벽까지 바쁘다.

일상에 지친 이들은 위안을 찾아 그렇게 술집을 찾는다. 외로워서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쉴 새 없이 함께 재잘대는 트위터 친구도 있고, 페이스북 친구도 있고, 온라인 카페 친구도 있고, 카카오톡 친구도 있다. 그 무수한 친구들을 1초가 멀다고 대면하면서 외롭다고 다시 친구를 찾는다.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이'다. 내게 가장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는 누구일까. 나 자신 아니었던가. 해서 외로움은 밖에서 밀려들지 않고 안에서 일어난다. 날마다 술집을 찾아 친구들과 온갖 수다를 다 떨고 돌아와도 외롭고 허전한 까닭은 '나'라는 친구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

광주 구 시청 사거리 중심엔 도미니크 페로의 어반 폴리(Urban Folly·도심 예술작품)가 있다. 작가는 동양식 가옥을 흉내 내 작품을 디자인 했다고 한다. 집이 있으니 언제든 의자를 가져다 놓고 쉬라는 것이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의자를 건넬 시간이다. 힐링은 그렇게 진솔하게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광주천 따라걷기 #금남로 #충장로 #구시청 사거리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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