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 구실을 하고 있는 '아시아문화마루'.
이주빈
밤비를 맞으며 날을 새운 시민들은 20일 오후 6시부터 대형 버스와 트럭을 앞세우고 금남로에 집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총 대신 태극기를 들고, 군가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그날 밤 11시경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감행했다.
21일 무장한 시민들이 광주 시내 곳곳에서 계엄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계엄군은 전남도청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정오 무렵부터 금남로에 있는 시민들을 한 명 한 명씩 조준 사살했다. 금남로는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무장한 시민들이 도청으로, 도청으로 몰려들었다. 기세 눌린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피로 되찾은 평온이 22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짧게 이어졌다. 사람들은 훗날 이날을 '해방광주, 대동광주'라 했다. 고립된 광주의 평온이었지만 단 한 건의 도둑질, 강도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두고두고 광주의 자긍이 되었다. 살육한 자들보다 우월했던 살육당한 자들의 도덕성. 그렇게 1980년대는 광주의 피로 체면치레 한 비겁의 시절이었다.
27일 새벽 2만5천 병력을 동원한 계엄군은 시민군이 잠들어 있던 도청을 공격했다. 시민군 17명이 사망했고, 295명이 체포되었다. 오전 5시 22분 도청은 계엄군에 의해 완전 장악됐다.
항쟁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국책사업의 하나다. 이 사업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시작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마다 5월 17일엔 금남로에서 '5·18전야제'가 열리고 있다.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이 무대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금남로에 찾아와 집회를 연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분노가 치미는 사연들을 금남로는 오늘도 묵묵히 함께 듣고 있다.
금남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충장로는 광주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거나 만남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지금도 특별한 약속 장소를 정하지 못한 이들은 충장로 한가운데 있는 광주우체국 앞에서 만난다. 시민들은 한때 이곳을 '우다방'이라 정겹게 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체국 다방'이란 뜻이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의자'를 건넬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