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현관 오른쪽에 '미당농원'이란 글귀가 쓰인 목간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섯다. 안찬기 씨 작품이다.
이화영
지난 9일 안씨 부부를 만난 곳은 1차선 도로와 맞닿아 있는 조립식 주택이다. 집 왼편에는 복숭아를 수확해 선별하고 포장하는 작업장이 자리 잡았고, 집과 작업장 너머에는 이들 삶의 터전인 복숭아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현관 오른편에는 '미당농원'이란 글귀가 쓰인, 9척은 족히 넘어 보이는 목 간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시골 농부답지 않게 보라색 바탕에 쥐색 띠가 들어간 털모자를 눌러쓴 안씨가 수줍은 눈인사와 나직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았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연료가 나무인 화목보일러가 있었고, 주변에는 작은 테이블과 간이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이 부부가 농촌에 내려오고 3년 동안 수입이 없었다. 복숭아는 식재 후 3년이 지나야 겨우 열매가 달리고 6~7년이 지나야 본격적인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목공예를 위해 내려왔지만, 재료를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결국, 남의 집 일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고 거기서 농사일도 배웠다.
'귀농하고 힘들었던 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큰 이견을 보였다. 남편 안씨의 말이다.
"그 당시 대학을 갈까도 생각했는데 나무를 선택하고 귀농을 했어요. 요즘 강의 요청이 있어 출강하거나 공모전에 출품할 때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인데 세월이 좀 더 흐르면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가 오겠죠. 귀농 후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었고, 지금 다시 그 시간이 와도 귀농을 선택할 겁니다. 지금까지 힘든 기억은 한 번도 없어요. 바깥세상과 큰 교류 없이 일정 공간에 갇혀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지만,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농사짓고 나무를 만지는 순간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남편의 말에 아내 황씨는 발끈했다.
"행복이요? 생활고 때문에 8년 전에는 식당을 운영했었어요. 2년 정도 식당을 했는데 무거운 그릇이며 식 재료를 나르면서 허리 디스크가 생겨 결국 식당을 접었어요. 남편을 보면서 진작 식당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무 조각할 손으로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그땐 작품 활동은 꿈도 못 꿨거든요."이 부부는 귀농하고 생활고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선한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우며 쓰린 과거를 들춰냈다.
"산수화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지금은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있지만, 예전엔 마땅한 장소가 없어 시골집 한쪽에 세워 뒀다가 분실했어요. 진짜 아끼던 작품이었거든요. 그리고 촛대가 있었어요. 그 작품도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은 작품이었습니다. 시골에 막 내려와서 돈도 없고 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촛대를 포함해 그동안 만든 작품 다섯 점을 지인에게 팔아달라고 줬어요. 그런데 한꺼번에 분실한 거예요. 상심이 너무 커서 3년 동안 조각도를 만지지도 않았어요."조각도 잡은 지 20년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