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은 가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담담한 서사 속에 담아내고 있다.
김진형
고종석의 신작 소설 <해피 패밀리>를 읽었다. 단단한 문장 속에 펼쳐지는 이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고종석은 가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담담한 서사 속에 담아내고 있다. 어찌보면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와 정반대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여느 가족처럼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과학과 외국어 소설 분야의 책을 만드는 편집장 한민형을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는 9명의 인물이 각자의 시선으로 가족이란 큰 그림의 조각을 맞춰 간다. 우리의 평범한 기대는 큰 그림이 완성될 즈음 <내 딸 서영이>처럼 어떤 극적 화해에 이르지 않을까 추측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완성된 그림 속에 또하나의 파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첫 번째 독백. 아들 한민형은 편집장으로 일하지만, 책의 이상 혹은 낭만 따위가 아닌 책의 비루한 현실에 도피할 뿐이다. 어떤 면에서 한민형이라는 인물은 글의 무력함을 토로하며 절필 선언을 한 고종석의 페르소나처럼 보인다(참고로 이 소설은 고종석의 절필 선언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그런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 한민형은 사람이 쓴 글에 대한 기대를 이미 잃은 지 오래됐다. "'글과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라고 단정 짓고, 그저 책은 "세상에서 나를 격리하는, 아니 보호해주는 벽"으로 존재한다. 한민형에게 "책은 아편이다, 술만큼이나". 그런 한민형의 손에 들여있는 책은 역설적이게도 프랑수아즈 파리스의 소설 <행복한 가족>이다. 한민형은 저자를 대신해 혹은 우리를 대신해 묻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가족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해피 패밀리'의 불행
한민형의 독백을, 아버지 한진규의 독백이 잇는다. 그리고 어머니 민경화가, 다른 이들의 독백이, 이 가족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진규는 아들을 편집장으로 둔 출판사 사장이다. 아버지는 도대체 욕심도, 열정도 없는듯 보이는 아들 한민형이 못마땅하다. 어머니 민경화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고 교통 사고로 죽은 친구의 딸을 입양시켜 시녀처럼 부린다. 입양된 동생 한영미는 엄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라다 민형의 도움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가족들에게 인정받는다.
한민주는 입양된 한영주와 같은 방을 쓰는 게 못마땅했다. 둘은 동갑이었고,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영주를 괴롭히는 것은 당연했다. 한민형의 아내 서현주에게는 가족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들을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은 그저 관성'이었음을 발견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버지 한진규도, 남동생 한민형도 그리워하는 누이 한민희.
"유럽 신화의 요정 같은 아이. 탐미 속에 윤리를 감추고, 윤리 속에 탐미를 숨기던 아이. 천사의 육체에, 사시미의 와사비처럼 악마의 쏘는 맛을 살짝 묻히고 다녔던 아이. 그 쏘는 맛 때문에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본문 61쪽)한민희는 대학생이 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살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민희가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은,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소개되는 민희의 일기와 유언장 같은 마지막 편지에서 밝혀진다. 자살의 이유가, 이 가족의 불행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같지는 않다(자살의 이유를 이 기사에서는 밝히지 않겠다).
다만, 그 사건은 보다 근본적 문제의 과정일 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개연성이 이 가족들에게서 발견되지만 유독 한민희란 인물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고종석이 언제부터인가 금기시된 어떤 통념과 합의에 도전했듯이 한민희라는 인물에는 작가의 욕망이 투영된 것 아닐까. 한민희라는 인물은 비현실적이나, 그녀의 욕망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한민희의 죽음을 통해, 이 가족의 근본적 문제는 전면에 부각되고 봉합된다.
가족들의 독백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그 속에 잠재된 깊은 불신이다. 서로를 원망하고 오해하지만 내밀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근본적 원인은, 가족임에도 완전한 소통과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그런 불가능에도 한민형의 가족들은 자신의 욕망을 가족들에게 요구하고 집착한다. 작가는 정겹고 행복해야 할 당위로서의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의 오랜 믿음인 가족이라는 성역에 도전한다. 결코 소통되지 않는 우리의 고독이 있다는 것을, 그 엄연한 사실을, 가족이란 공간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하기야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어떻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본문 153쪽)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